퇴직 1년이 지난 역대 대법관 122명 중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전직 대법관은 5명(4%)뿐이다. 역대 검찰총장 39명 중 전관예우 혜택을 포기한 사람은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인 등으로 전업한 이들을 제외하면 전직 검찰총장 대다수가 대형 법무법인(로펌)에서 대표 변호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쥐기만 하면 잡을 수 있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참된 법조인의 길을 걸어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이들도 있다.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던 관행을 최초로 깬 사람이 조무제(74)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석좌교수다.
법관 시절 청빈한 생활로 ‘딸깍발이 판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조 교수는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모교인 동아대로 돌아갔다. 조 교수는 강단에 서는 동안에도 남몰래 월급을 떼어 1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제자들에게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역대 헌법재판소 재판관 33명 중에서도 두 사람만이 변호사 개업을 포기했다. 2007년 헌법재판소장이었던 이강국(70) 전북대 로스쿨 석좌교수와 전효숙(64) 이화여대 법대 교수를 제외한 모든 재판관이 법복을 벗은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변호사 대신 ‘농부’의 길을 걷고 있는 이도 있다. 송종의(74·사법시험 1회) 전 법제처장이 그 주인공이다. 벌거숭이 민둥산이 안타깝다며 1969년 검사로 부임한 이래 30년 넘게 밤나무를 심어온 그는 현직에 근무할 때 ‘밤나무 검사’로 불렸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대법관은 “한창 일할 나이에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걸 무작정 비난하기 어렵다”라며 “미국처럼 종신제를 도입하거나 임기를 늘린다면 대법관 등 고위직에 올랐던 법조인이 전관예우 변호사로 일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