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반기드는 미국 기업들이 부럽다

  • 등록 2017-02-01 오전 5:00:00

    수정 2017-02-01 오전 5:00:00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미국의 글로벌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정책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갓 취임한 ‘절대 권력자’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각을 세우고, 맞서 싸우는 모습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한 행정명령의 영향력을 우려한다”고 말했고,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는 “앞으로 5년간 전 세계에서 난민 1만명을 채용하겠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구글은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 행정명령 서명 후 400만달러(약 47억원) 규모의 난민 구호기금을 조성했다. 이 회사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열린 반대 시위 대열에도 동참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이민이 없었다면 애플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런 미국 기업의 도발이 한국 기업들 입장에선 낯설기만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절대 권력에 대한 반기는 불경죄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이 최고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 기업들은 대통령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입도 벙긋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에 의해 ‘비협조적’이라고 낙인 찍히면 막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제그룹처럼 말이다. 1980년대 재계를 호령했던 국제그룹은 프로스펙스 신발 뿐 아니라, 중화학, 섬유, 건설 등의 사업에 진출하면서 재계서열 7위에 올랐던 기업이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시기인 1985년 순식간에 공중분해 됐다.

국제그룹 해체의 표면적인 이유는 무리한 기업 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 등이었지만, 정치자금이 다른 기업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 진다. 이른바 ‘괘씸죄’로 인해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나중에 헌법재판소도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공권력에 의한 국제그룹 해체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30년이 지났지만 기업들에 대한 최고권력자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의 서슬 퍼런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최고 권력자에게 있어 기업들은 여전히 ‘돈줄’이나 ‘봉’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들의 입맛에 따라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은 30년전이나 지금도 상황은 크게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퇴진 압력을 가하고, KT와 포스코 회장 임명에 대해서도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하니, 국가권력의 재벌 줄 세우기와 충성 강요는 새정부가 들어서면 치르는 의례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정부의 잘못된 행위에 반기를 들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는 아닐까 싶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최근 헌재에 추가 제출한 변론 준비서면에서 “삼성 등 미르·K스포츠 재단에 재산을 출연한 기업들을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 공범이 아니라 권력자에게 강제로 재산을 뺏긴 피해자”로 간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특검에서는 재벌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자산 규모에 맞춰 일률적으로 정한 기금액을 낸 것”이라며 “기업들 입장에서 청와대 요청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권력자의 무리한 요구에도 숨죽이며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기업들의 현실이다. 정권에 밉보이면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등 무차별 사정(司正) 칼날을 받아내야 하는 기업들은 권력 앞에 약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미국의 다양성과 다인종 전통은 미국의 약점이 아닌 가장 위대한 힘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최소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권력자에게 모두가 ‘예’라고 대답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 다양성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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