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쿠팡의 ‘혁신’에는 사람이 없다

‘혁신기업’ 쿠팡 곳곳서 잡음
배송기사 정규직 채용 불이행에 ‘착한기업’ 이미지 퇴색
쿠팡맨·판매자·소비자···‘고객’ 바로 알아야
  • 등록 2017-05-30 오전 5:20:00

    수정 2017-05-30 오전 5:20:00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행동경제학 이론 가운데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어떠한 프레임(틀)을 씌우느냐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구조화 효과’ 또는 ‘틀짜기 효과’라고도 한다.

쿠팡은 ‘프레이밍 효과’를 말할 때 주로 언급되는 ‘물이 절반 채워진 컵’과 같다. 기술(IT)기업과 유통기업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정확히 그만큼의 논란을 불러왔다.

쿠팡의 외형확대에 불을 지핀 ‘로켓배송’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로켓배송을 도입하기 직전년도인 2013년 쿠팡은 매출 478억원, 영업손실은 1억5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1조9000억원, 영업손실 5600억 원을 냈다.

누군가는 쿠팡의 행보를 보며 ‘물이 절반이나 남았다’라고 미래를 낙관하고, 또 누군가는 ‘절반 밖에 안 남았다’고 우려한다.

온라인쇼핑기업 쿠팡이 흔들리고 있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컵에 채워진 물이 절반 이하로 줄고 있는 모양새다. 쿠팡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바뀐 건 혁신기업 쿠팡의 상징과도 같던 자체배송인력 ‘쿠팡맨’의 불만이 외부로 터져 나오면서 부터다.

쿠팡맨 채용과 관련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난 4월1일 쿠팡 본사에서 직원들과 상의 없이 인센티브 제도를 바꾼 것이 논란을 키우는 도화선이 됐다.

2015년에 이어 2016년 쿠팡이 2년 연속 5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을 때에도, 기존 택배업계가 영업용 번호판을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쿠팡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왔을 때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 물이 절반이나 남았다’며 쿠팡을 옹호했다. 쿠팡은 그만큼 사랑받는 기업이었다.

이러한 우호적인 시선은 쿠팡 기사에 대한 네티즌의 댓글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섞여 있지만 대체로 낙관론이 우세하던 과거와 달리 판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1년 전 쿠팡 측이 쿠팡맨에 대한 채용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쿠팡은 외주로 쓰던 택배기사를 직원으로 채용해 이중 60%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약속하면서 ‘착한 기업’ 소리까지 들었으나 까다로운 정규직 심사기준에 높은 노동강도로 중도 이탈하는 쿠팡맨이 늘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김범석 대표는 2017년까지 쿠팡맨을 1만5000명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재 쿠팡맨은 3600명, 이중 정규직은 37%에 머물고 있다. 이마저도 쿠팡 본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정확히는 확인되지 않았다.

쿠팡의 최대 경쟁력이었던 배송에 빨간불이 켜진데 이어 온라인 판매가 금지된 의약품을 팔고, 홈페이지에 상품 가격을 잘못 기재해 올렸다가 뒤늦게 판매를 취소하는 등 불미스런 사건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배송지연 사태도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음은 물론이다.

쿠팡은 1년 전 오픈마켓 서비스인 ‘아이템마켓’을 론칭하며 같은 상품 여러 개를 한데 묶어 대표상품 1개만 노출하는 ‘적자생존’ 방식을 택해 판매자들의 반발의 샀다.

쿠팡의 사업 모델은 크게 직매입 판매와 오픈마켓 두 가지로 나뉜다. 오픈마켓은 판매자들에게 장터를 마련해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그렇게 본다면 판매자, 즉 입점사는 쿠팡의 또 다른 고객이어야 옳다. 쿠팡은 지금부터라도 자신들의 고객이 누구인지 바로 알 필요가 있어 보인다. 쿠팡의 혁신 중심에 있는 쿠팡맨에게도 보다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쿠팡맨을 장기판의 졸(卒) 정도로 활용했다는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비자와 입점사, 임직원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로켓배송이 가능한 최소 주문액을 기존 9800원에서 1만9800원으로 인상할 때에도, 쿠팡맨들에 대한 채용약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됐을 때에도, 아이템 마켓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 하나를 대표 상품으로 노출하는 ‘아이템 위너’ 방식을 채택할 때에도 충분한 설명을 비롯한 사전 조율은 없었다.

기업을 키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쿠팡은 기억해야 한다. 쿠팡의 배송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소비자들에게 물건이 아닌 감동을 전했기 때문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쿠팡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배제된 혁신은 공허하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같이 좀 씁시다
  • 나는 나비
  • 천산가?
  • 우린 가족♥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