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세종대왕·이순신도 청문회 통과 어렵다

‘도덕성·능력 검증’ 인사청문회, 내로남불 대명사 전락
與 창 대신 방패 vs 野 방패 대신 창…낯 뜨거운 풍경
청문회 단골메뉴 ‘위장전입’ 둘러싼 비생산 공방 멈춰야
미국처럼 사전 검증 주도할 독립적 국가기구 신설 필요
  • 등록 2017-06-18 오전 7:00:00

    수정 2017-06-20 오후 7:41:13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통치의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인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천하의 김영삼과 김대중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특히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도입과 2005년 7월 청문대상 장관 확대로 이어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사청문회 개편론이 봇물을 이뤘지만 그 때뿐이었습니다. 여야의 유불리가 첨예하게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분명 똑같은 정당인데 여야가 뒤바뀌면 입장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인사청문회의 나이는 이제 고작 17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입니다. 행정부 견제와 고위공직 임용 기준 강화라는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다만 정치공방의 산물로 변질된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과도한 신상털기로 망신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인사청문회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나온다 해도 청문회 통과를 장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로남불’ 초등학생도 아는 필수 고사성어(?)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의 줄임말입니다. 명대변인으로 유명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과거 대변인 시절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말입니다. 얼핏 들어서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나 고진감래(苦盡甘來)와 같은 고사성어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실제 일부 초등학생들은 ‘내로남불’을 고사성어로 알고 있다는 웃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뜬금없이 ‘내로남불’을 꺼낸 것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장의 낯 뜨거운 풍경 때문입니다.

“정책검증이 사라졌다” “왜 후보자의 철학과 비전은 무관심인가” “망신을 주려고 작정했다” 청문회장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박근혜정부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의 레퍼토리였는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레퍼토리로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은 날카로운 창을 버렸습니다. 정권교체로 여야 입장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방패 대신 창을 든 자유한국당이나 창 대신 방패를 든 민주당 모두 ‘안습’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정공백이 너무 크다” “무조건 발목잡기는 안된다”고 외쳤던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의 인사에 대해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1년 만에 얼굴을 뒤바꾼 민주당 역사 과거 한국당의 레퍼토리를 반복하면서 국정운영 협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내로남불’입다. 지난해 8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여야의 태도와 비교하면 헛웃음이 날 정도입니다. 당시 민주당은 창을,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방패를 들었습니다. 김상조·강경화 임명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야당은 정면충돌을 벌였습니다. 김상곤·조대엽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야당의 사퇴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만일 비슷한 의혹이 박근혜정부 하의 장관후보자의 경우였다면 “사퇴하라”고 맹공에 나섰을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내로남불’은 위장전입입니다.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최대 단골메뉴입니다. 위장전입은 사실 주민등록법에 없는 용어입니다. 37조 2항의 ‘주민등록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라는 표현을 대체한 것입니다. 처벌조항도 강력합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다시 말해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게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수준입니다. 위장전입이 장관 낙마사유인지를 놓고 여야는 매번 다툽니다. 부동산투기나 진학 등의 특혜목적이 아니라면 비생산적인 공방은 중지해야 합니다. 주민등록법상 “3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사는 주소를 시군구 관할구역에 등록해야 한다”는 조항은 사실 사문화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압니다. 게다가 주민등록 자체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주민통제 수단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이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14조와도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보다 ‘수신제가(修身齊家)’에만 매달리는 인사청문회

역대 인사청문회에서 수많은 공직후보자들이 울고 웃었습니다. 누구는 무난히 청문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또다른 누구는 불명예 속에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대중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낙마사례가 있습니다. 국민의정부 말기 장대환·장상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와 참여정부 시절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낙마가 대표적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낙마사례가 더 늘었습니다. 도덕성 기준을 더 후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명박정부 시절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총리 낙마자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김용준, 문창극, 안대희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공직 후보자의 낙마사유는 업무능력이 아닙니다. 대부분이 도덕성 등 개인 신상문제입니다.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이 대표적인 사유입니다. 이른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원칙입니다. 나랏일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기 주변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맞습니다. 고위공직자는 높은 도덕성이 당연히 요구됩니다. 문제는 ‘내로남불’입니다. 다운계약서, 병역면제 의혹, 위장전입,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등등. 의혹은 똑같은데 누구는 장관이 되고 누구는 낙마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여야가 늘 오락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도덕성 검증에만 매달리다보면 정작 정책검증에는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이슈 역시 경제·사회·외교안보 부처에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이 도덕성과 신상 문제입니다.

장관으로서의 전문성과 능력은 크게 문제가 없는데 도덕성 문제로 하차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은 크게 문제가 없는데 장관으로서의 전문성과 능력이 모자란다고 낙마한 사례가 있을까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보다는 수신제가(修身齊家)에만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도덕성과 능력을 두루 검증해야 한다는 청문회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편은 필수적입니다.

인사청문회, 대통령 인사권 무시(?)하는 현대판 연좌제(?)

인사청문회의 취지는 간단합니다.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역량 평가입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현 인사청문회는 현대판 연좌제의 우려가 있습니다. 또 대통령의 인사권을 일상적으로 무력화시킬 위험성도 다분합니다.

우선 연좌제는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아버지가 역모에 가담했을 경우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과 손자가 함께 죽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대역죄의 경우 ‘3족을 멸하라’는 규정이 경국대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다릅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13조 3항에는 ‘연좌제 금지’ 규정이 명문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는 낮은 수준에서 일상적으로 연좌제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 검증이라는 본질은 사라집니다. 사생활 침해를 비롯해 도 넘은 신상털기가 횡행합니다. 더 거칠게 이야기하면 ‘망신주기’입니다. 후보자 본인에게 별다른 흠이 없다면 배우자, 자녀는 물론 사돈에 8촌까지 탈탈 털립니다. 이 과정에서 내밀한 개인의 의료정보도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이낙연 총리는 아들의 뇌종양 수술 사실을 밝혔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부인의 암투병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현행 국회 인사청문회는 존재하지도 않은 성인군자 찾기 게임입니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항의해도 좋을 것 같은데 후보자들은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납작 엎드립니다. 망신은 순간이고 장관은 영원하다는 태도입니다. 역대 정부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핵심 인사들은 “정말 괜찮은 분들이 많은데 청문회에서 망신당하기 싫다며 고사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정부 인사에 관한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분명하게 정하고 있습니다.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의 임명은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반드시 존중해야 합니다. 장관 등 그 밖의 정부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국회가 정해진 기간 안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입니다. 장관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틀린 말이 없습니다.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적격·부적격 여부를 기록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면 됩니다. 임명은 대통령 몫입니다. 만일 부정적 여론에도 임명을 강행하면 정치적 부담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입니다. 역대 정부 출범 초마다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야당의 태도는 권력을 잃은 것에 대한 한풀이식 보복정치입니다. 지금의 야당이나 과거의 민주당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세종대왕·이순신이 현역 의원이 아니라면…여야 ‘역지사지’ 절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입니다. 수도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광장에는 두 사람의 동상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단순한 임금이 아닙니다. 한글을 창제하고 태평성대를 연 ‘성군(聖君, 성스러운 군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입니다. 우리는 존경의 의미를 가득담아 ‘성웅(聖雄, 성스러운 영웅)이라고 추앙합니다. 만일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다면 두 사람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까요?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어떤 정부도 좋습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만일 현역 의원이었다면 청문회 통과 가능성은 거의 100%입니다. 이른바 현역의원 불패 신화입니다. 임명직 고위공직자에게는 장관 낙마사유에 해당하는 문제도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현역의원이 아니라면 상황은 또 달라집니다. 두 사람의 청문회 통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영화 ‘친구’가 아니었다면 모든 국민들이 알 수 없었던 부산 사투리입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 동안 당시 한나라당은 수많은 공직자를 낙마시켰습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하에서 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가 각각 10년 동안 필요 이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습니다. 매번 싸울 게 아니라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미국 정부윤리청(OGE)처럼 고위공직 후보자의 철저한 사전검증을 전담할 독립적인 국가기구의 신설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야의 역지사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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