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용서하지 마라, 얘들아

  • 등록 2014-04-24 오전 7:08:00

    수정 2014-04-24 오전 7:08:00

[소설가 한창훈] 참담하다. 못살겠다. 이런 글 정말 쓰고 싶지 않다. 뉴스 보다 말고 집 앞 바닷가로 나간다. 지난번 조금(소조기) 때는 주민들이 몰려와 갯것을 했다. 바지락 캐고 고둥과 게를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 명도 없다. 생산과 생명의 깊고 푸른 바다가 한순간 죽음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바다는 전 세계 모두 이어져 있다. 저 푸른 바닷속에서 죽어간, 아직도 잠겨 있을 애들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내 동생, 춥고 무섭지?’ ‘빨리 와서 엄마랑 저녁 먹자.’

생환을 기원하며 쓴 가족들 편지이다. 추웠을 것이다. 무서웠을 것이다. 빨리 가서 엄마랑 같이 밥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발밑에서 올라오는 공포와 만나버렸다. 배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아이들을 방에 가둬두고 도망가버린 사람들. 밀려오는 죽음. 세월호에는 퇴선 명령 내릴 캡틴이 없었다. 구명정을 띄우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울 사관선원도 없었다(어깨의 황금 견장은 누구에게 받은 것일까). 그 애들은 자기들끼리만 큰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항해한 것이다.

허둥대는 경찰. 뒤에 있던 ‘안전’을 앞으로 모신 것으로 모든 일을 끝낸 행정 책임자들. 기념사진 좋아하는 고위공무원. 상관에게 보고하는 게 더 중요한 하위 공무원들. 낡은 잡지 속으로 들어가버린 재난대책 매뉴얼. 항해 기본 장비가 고장 난 상태로 정원만 늘어난 낡은 배. 수리 요구를 묵살하고 해고 협박한 회사. 그리고 재산이 아주 많은 세월호 실제 소유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이 수천억원이라고 한다. 종교, 임금 착취, 두 단어가 함께 등장했다. 우리 사회의 비참을 나는 여기서 본다. 선원들의 높은 이직률과 수천억 재산, 그 이질적 차이. 선장을 비정규직으로 계약한, 책임감을 요구하려면 정당한 처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척한 사람. 그 사람이 찍었다는 사진도 보았다.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그의 눈에는 세상이 평화롭고 풍요로웠을 것이다. 살 만한 곳일 것이다.

그리고 애들은 죽었다. 엄마 아빠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지만 살아 돌아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도덕경에 ‘자연은 자애롭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 같이 다룬다’는 말이 있다. 바다를 뒤엎는 태풍, 망가진 마을. 어선 침몰, 가까운 이들의 실종과 사망, 선원교육 받을 때 접했던 숱한 해양사고들. 나는 이런 것을 보고 듣고 살아왔다. 천지가 어질지 못하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최소한 무심한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죽은 게 아니라 칠칠치 못한 어른들이 애들을 그냥 죽였다. 몰살이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인재(人災)는 없다. 그래서 참혹하다. 모성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진도바다에서 본다. 자신의 이익과 편리 앞에서 모든 가치를 내버리는 모습. 우리 사회는 이미 실패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다면 이 비참이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용서하지 마라, 얘들아. 이해와 수긍, 이런 거 절대로 하지 마라. 얼마 전에도 아이들이 건물에 깔려 죽었고 어른들은 회의를 했단다. 용서를 해버리면 몇년 뒤 또 회의를 하고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또 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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