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작가 "말이 썩으면 얼도 죽어…우리 겨레말 느껴보라"

27년 만에 장편소설 '국수' 완간
조선 예인들 한 시대 풍미하는 이야기
총 6권 분량 육필로 완성
"기존 역사소설과 달라…계급적 언어 고증"
  • 등록 2018-07-26 오전 1:03:27

    수정 2018-07-26 오전 10:15:18

김성동 작가는 조선의 말과 글, 전통적 생활 문화를 생동감 넘치는 서사로 그려냈다. 김 작가는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되살리려 했다”며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것을 알고 지켜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무려 27년이 걸렸다. 1991년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후 2018년이 돼서야 완간했다. 장편소설 ‘국수’(國手·솔출판사)는 김성동(71) 작가의 혼이 서려있는 작품이다. 총 6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육필(손으로 직접 쓴 글씨)로 완성했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국수’를 가리켜 “27년 만에 완성된 기념비적 걸작”이라고 평했다.

‘국수’는 바둑·소리·악기·무예·글씨·그림 등 나라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나 일인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소설은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각 분야의 예인과 인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19세기 말 충청도 내포지방(예산·덕산·보령)을 배경으로 바둑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석규와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름난 화적이 되는 천하장사 천만동, 선승 백산노장과 불교비밀결사체를 이끄는 철산화상, 동학접주 서장옥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130여년 전 조선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민중의 구체적인 삶과 언어를 충실하게 복원해냈다. 김 작가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갈갈이 찢긴 우리말과 문화, 정신을 되살리고자 100년 전의 언어와 풍속을 가능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대의 풍속과 언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수사전’도 별권으로 만들었다.

김 작가는 1978년 승려 생활을 바탕으로 쓴 화제작 ‘만다라’를 출간한 이후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한채’ ‘집’ ‘길’ 등의 작품을 썼다. 김 작가는 “글쓰는 기계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로지 전통적 방식인 손글씨가 편하다”며 “국수’를 좀 지켜본 후에 다음 소설을 생각하려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집필 27년 만에 소설을 완간한 소회는

△조선 왕조가 스러져가던 시기를 살아온 민중의 삶을 고스란히 되살리려 노력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전들은 일제가 만든 사전을 그대로 답습한 상태이고 북한 사전도 남한 것을 베낀 수준이니 남북한 모두 다 국어사전이 없는 상태였다. 일제가 침략하기 전에 쓰던 고유한 겨레말 사전이 없다.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할머니·어머니·고모에게서 어릴 적부터 들은 우리 고유의 말과 말투를 기억해내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검증·확인하는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27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되어야 했던 첫째가는 이유다. ‘겨레말 큰 사전’ 편찬자들도 크게 놀라고 감동하는 눈치니 긴 세월의 노고가 가시는 듯하다.

-이번 소설의 특징을 꼽는다면

△바둑소설로 혼동하는 이가 더러 있는데 19세기 말 조선이 망해가던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국수’는 나라 안에서 바둑 최고수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에 오른 인물에게 바치는 민중의 꽃다발이나 헌사를 가리킨다. ‘국수’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국수’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이지만 기존의 역사소설과는 크게 다르다.

-‘아름다운 조선말’을 재현하는데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

△‘국수’에 대해 기존 문단에서는 어떤 문학적 평가를 내놓을지 모르겠다. 19세기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침략당하고 강탈당하기 직전까지 조선 사회 문화를 다루면서도 어느 역사소설도 다루지 않은 조선사회 각계각층 특히 계급별 조선말을 구별했다. 근대 이전의 언어는 계급별 언어가 뚜렷하게 구별돼 있었다. 사회 계급이 언어를 결정한 것이다. 홍경래 농민봉기, 동학농민봉기 등을 역사적 동기로 삼으면서 당대 충청도 내포 지역 농민들의 동향을 그리고 있다. 양반·중인·평민·천민 등 각각의 계급적 언어를 일일이 찾아 확인하고 고증해가면서 되살려냈다.

-뜻풀이를 해놓은 ‘국수사전’의 작업과정은

△젊은 시절부터 우리 고유의 말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사라진 우리말, 왜곡된 우리말을 찾고 바로잡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기록해두었다. 이런 작업 덕에 내가 손수 지은 ‘국수사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점은

△전통적 생활문화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을 제대로 알아야 오늘날 전승할 수가 있다. 올바른 전통의 전승을 위해서는 근현대사 이래 왜독(倭毒), 양독(洋毒), 한독(漢毒)에 죽어 사라졌거나 망가지고 더럽혀진 우리 고유한 말을 되살려야 한다. 말은 곧 얼이다. 말이 썩으면 얼도 죽는다. 오늘날 우리말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파괴당했고 해방 이후에도 서양말에, 오늘날엔 중국말에 의해 심히 왜곡되고 병들었다. 지금 겨레말을 살리는 것이 시급하고 매우 엄중하다. 남북 통일시대라는 앞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유한 겨레말을 되살리는 일이 중요하고 절실하다.

김성동 작가(사진=솔출판사).
김성동 작가(사진=뉴시스).
김성동 작가 육필원고(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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