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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삼성특검으로 변질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기간 이 부회장은 1·2심 공판 출석을 위해 포승줄에 묶인 채 62차례 재판정에 불려 나왔다. 구치소 수의 차림 대신 정장을 입고 재판정에 나오는 이 부회장의 모습은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있다. 이 사이 삼성은 곳곳에서 총수 부재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우여곡절 끝에 사장단 인사와 임원 승진·조직개편 등을 끝냈지만, 금융·물산 등 삼성의 다른 계열사들은 아직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를 절감한 삼성전자는 급기야 정현호 사장을 팀장으로 하는 ‘미니 미래전략실’ 격인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팀을 새로 꾸렸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법리공방이 지속되면서 공회전하는 재판에 대한 안타까운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삼성 금융계열사, 내년 초 인사설 ‘솔솔’
지난 17일 호암(湖巖)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30주기 추도식. 경기도 용인 소재 호암미술관 선영에서 치러진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삼성 사장단 약 60명의 표정은 묘하게 엇갈렸다고 한다. 인사가 끝난 삼성전자 CEO(최고경영자)들이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다면, 금융계열사 CEO들은 속이 편치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삼성 금융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인사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다”면서 “과거에는 통상적으로 12월 초에 한번에 전자·금융 계열사들이 인사를 단행했는데, 이번에는 아직 소식이 없다. 인사를 급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고 말했다.
그룹 인사의 전반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미래전략실이 해체돼 예전처럼 일사천리로 인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커 보인다. 특히 금융 계열사들의 경우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예전보다 까다롭게 CEO를 선정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내년 초로 인사가 연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사 CEO는 법률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사장을 추천하고 이사회를 거쳐야 한다. 시간상 올해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공회전 공판, 재판장이 수시로 제지하기도
공회전하는 실속없는 재판이 계속되는데 대한 우려도 크다. 이르면 내년 초 항소심(2심)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증인 출석 여부에 따라 공판 기일만 흘려보낼 가능성도 있다. 증인 출석을 요구 받았던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모두 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에는 특검 측이 요청했던, 최순실씨 조카인 장시호씨가 다음달 선고를 앞둔 본인 재판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항소심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 측 변호인단의 헛된 공방이 계속되자, 재판부(재판장 정형식)가 나서 중간에 제지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재판부는 양측 공방이 길어지자 “이 자리는 쟁점과 관련해 결론 내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모자란 부분은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 뇌물 공여는 공무원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만 입증되면 죄가 성립하는 데 비해, 제3자 뇌물 공여는 대가성뿐 아니라 부정한 청탁까지 인정돼야 죄가 성립한다. 단순 뇌물 공여 혐의를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특검팀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려 무리하게 공소장을 변경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