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체면을 워낙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회의석상에서도 상대방 체면을 고려해 여간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이는 자칫 정보 왜곡이나 정보 비대칭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식 체면 문화의 복잡함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만 제대로 이해하면 얼마든지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상명하복이 익숙한 한국 기업에서 아랫사람 체면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중국직원들로부터 반발을 사는 경우가 잦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일해 본 중국직원들로부터 이런 하소연을 자주 들었다. “한국회사에서 일하기 힘들다. 한국회사는 직급이 하나만 낮아도 손자 취급하더라”. 여기서 손자 이미지는 ‘뭘하든 귀엽다’가 아니라 소위 군대에서 말하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까마득한 부하’를 뜻한다.
이러한 설명은 일상 표현에서도 그대로 활용된다. 하태(下台)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본래 ‘무대나 연단에서 내려오다’, ‘퇴진하다’라는 뜻인데 종종 다른 의미로 쓰인다. 바로 ‘곤경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무대를 잘 내려오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곤경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즉 체면을 잃지 않고 멋지게 내려오는 것을 뜻한다.
체면 관리라는 말이 우리 식 표현에서 너무 통속적으로 들린다면 또는 대의를 중시한다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아마도 ‘명분을 중시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이 전기 자동차용 전지사업에서 보조금 지급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으로 알려져 국내 전지업계가 술렁이는 모습이다. 이같은 사업적 갈등에서도 중국인의 체면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가 다르면 보이는 게 다르다고 했다. 문화가 다르면 가치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인은 주인(做人:사람을 만들다)이 아니라 견인(見人:사람을 보다)을 더욱 중시한다고 한다.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보다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중국인으로부터 “對不起(미안하다)”라는 말을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일단 잘못을 시인하면 앞으로 “이제 이 사람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지”라는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과 관계에서 체면은 반드시 고려해줘야 할 품위요 배려이며 최소한의 예의다. 한국적인 것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주장 일변도보다는 상대방이 체면을 잃지 않고 무대를 내려오게 하는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