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치킨게임, 공짜점심 그리고 그리스

  • 등록 2015-07-03 오전 3:03:02

    수정 2015-07-03 오후 6:45:04

마치 종착역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두 대의 기관차와 같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두 기차는 상대방이 목적지 앞에서 급정거할 것으로 여겼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두 열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 충돌한다면 수많은 사상자가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두 열차는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충돌하고 말았다. 열차가 탈선해 널브러진 곳에는 사고로 다친 이들이 피를 흘리며 신음했고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했다.

교통사고 기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 얘기다. 그리스호(號) 열차의 운전대를 잡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트로이카’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 국제채권단이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놓고 벌인 기싸움을 묘사한 대목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치킨게임’의 달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게임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은 상대방 담력을 떠보기 위해 절벽을 향해 달리던 두 차량 가운데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치킨게임은 강자보다는 약자가 즐기는 전술이다. 속된 말로 ‘더 잃을 것도 없는’ 처지에 있는 약자보다는 자칫 게임 하나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강자에게는 피하고 싶은 ‘독’(毒)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동안 채권단에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카드로 위협하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낸 치프라스 총리에게 채권단이 결국 등을 돌렸다. 채권단은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그리스가 재정지출 삭감과 구조조정 등 허리띠를 졸라매기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구제금융이라는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빠진 치프라스는 격앙한 분위기에 휩싸인 채권단의 기류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채 ‘정보의 비대칭성’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그리스가 정책실패의 대표적인 예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등에 업고 집권한 시리자(급진좌파연합)는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없는 공짜복지를 남발했다. 그리스 직장인 가운데 25%가 공무원이며 이들은 퇴직하면 자신이 받던 월급의 95%를 연금으로 받았다. ‘연금천국’이 따로 없다. 세수보다 복지지출이 커지면서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포퓰리즘의 전형인 그리스 연금제도는 국가재정을 거덜나게 한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또한 공무원들이 기승을 부리다 보니 기업들에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다. 국제적 추세에 뒤떨어진 과도한 규제를 만든 탓에 기업 경쟁력은 바닥을 면치 못했다. 결국 무분별한 복지정책과 낮은 기업경쟁력은 그리스를 국가부도로 이끈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대목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다.

올해 41세로 불혹(不惑· 헷갈리는 일이 없음)의 경지에 들어선 치프라스에게 정치는 고단위예술이 아닌 저항의 대상이었다. 그는 그리스 운명을 쥐고 있는 채권단에 긴축반대를 뜻하는 ‘노타이’차림으로 맞대응했다. 불혹이라기보다는 마치 기성세대에 무조건 반대하는 10대의 ‘질풍노도’(疾風怒濤)를 보는 듯했다.‘주인-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처럼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받아 정치를 하는 대리인 격인 치프라스는 국가와 국민의 번영과 행복보다는 자신의 시대착오적 정치철학을 고집하며 열차에 탄 그리스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파국열차’를 몬 것이다.

디폴트 위기를 맞아 일반 국민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현금인출기(ATM) 앞에 줄을 서서 예금을 대량 인출하는 그리스에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쳐 나라 살리기에 나섰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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