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들어오게 해? 말아?…인터넷은행 규제 완화의 ‘딜레마’

  • 등록 2018-08-10 오전 4:00:00

    수정 2018-08-10 오전 4:00: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서 모바일 기기로 카카오뱅크에서 보증금을 대출받는 과정을 지켜보고 질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대기업에 은행업 진출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까지 인터넷 전문은행을 활성화하겠다며 은산(銀産) 분리 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여전히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중복 규제 때문이다. 최대 관건은 대기업 집단 이른바 ‘재벌’의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 참여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느냐다. 이는 국회의 관련 법안 개정 논의에서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무위, 이달 중 인터넷銀 규제 완화 논의 착수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달 말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인터넷 전문은행의 은산 분리 완화를 위한 법률안 심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계획이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3당 원내대표가 해당 법안을 8월 임시국회 중 처리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법안은 통상 담당 상임위원회 법안 심사를 시작으로 법제사법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친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운신할 폭을 넓히라”는 문 대통령 발언이 있은 지 한 달도 안 돼 속전속결로 규제 손질에 착수하는 셈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소위의 심사 대상은 여·야가 발의한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 3건과 은행법 개정안 2건이다. 현재 은행법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 산업 자본(비금융 주력자)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전체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게 막고 있다. 5개 법안은 인터넷 은행의 경우 이 같은 지분 소유 상한을 34% 또는 50%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당인 민주당의 정무위 간사인 정재호 의원이 발의한 특례법 제정안이 논의의 중심에 놓일 전망이다. 정재호 의원 안은 산업 자본의 인터넷 은행 지분율을 34%까지 허용하는 것이 뼈대다. ICT 기업이 은행 주식의 3분의 1까지 가질 수 있게 해 최대 2대 주주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정재호 의원실 관계자는 “같은 당 내에 산업 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를 34%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서 설득 중”이라고 전했다. 반면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보유 한도를 50%까지 높이자고 주장한다. ICT 기업이 주도적으로 은행을 경영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이유에서다.

‘총수 있는 대기업 집단’은 규제완화 제외…카카오 ‘역풍’ 불까

더 큰 쟁점은 개인 총수(동일인·기업 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가 있는 총자산 10조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상호 출자 제한 기업 집단)에도 은산 분리 규제를 풀어줘야 하느냐다. 정재호 의원과 강석진 자유한국당 의원,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 등 3당 의원은 모두 인터넷 은행 규제 완화 법안에 개인이 총수인 대기업 집단에는 특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예외 조항을 넣었다. 총수 일가가 경영을 쥐락펴락하는 재벌 기업이 인터넷 은행의 지배주주가 되는 것을 차단해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 경우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 계열사의 인터넷 은행 사업 진출 문이 사실상 막힌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32개 중 개인 총수가 없는 곳은 현재 농협·대우조선해양·에쓰오일·포스코·KT·KT&G 등 6개뿐이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에 이은 제3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참여할 후보로 거론되는 교보생명(총수 신창재·자산 10조9000억원) 등은 아예 사업 참여가 불가능하고, 자산이 빠르게 불어나는 네이버(총수 이해진·자산 7조1000억원) 등 유력 IT 대기업도 진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번 은산 분리 완화의 최대 수혜 기업인 카카오(총수 김범수)가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카카오뱅크 지분 10%를 보유한 카카오는 자산 총액이 작년 6조8000억원에서 올해 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만약 카카오가 법 개정 후 카카오뱅크 지분을 50%까지 늘렸다가 자산이 10조원을 넘어서면 최대 46%에 달하는 지분을 도로 토해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대기업 지주회사, 은행 주식 못 가져…SK텔레콤 등 자회사도 ‘덜미’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의 은행업 진입을 허용하더라도 다른 걸림돌이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이 금융지주가 아닌 일반 지주회사(자회사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것이 목적인 회사)가 은행 등 금융회사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있어서다. SK·LG·롯데·GS·두산·CJ 등 국내 주요 재벌 그룹은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 출자 고리를 해소하라는 정부 압박에 따라 지금은 대다수가 일반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꾼 상태다. 지난해 10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롯데그룹이 롯데카드·롯데캐피탈·롯데손해보험 등 금융 계열사 지분 처분에 나선 것도 공정거래법 규제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집단의 3분의 1가량이 지주회사 체제”라며 “일반 지주회사는 은행 주식을 아예 소유할 수 없고, 지주회사의 자회사나 손자회사도 은행을 지배하지 않고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것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2015년 인터파크 등과 ‘아이뱅크’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융 당국에 인터넷 전문은행 인가를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신 SK텔레콤, GS홈쇼핑 등도 그룹 지주회사의 자회사인 탓에 신규 인터넷 은행에 소수 주주로만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인터넷 은행 관련 법안 중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 안에만 이런 족쇄를 풀어주는 내용이 들어있다.

KT는 담합 탓에 대주주 적격성 ‘도마’ …‘금리 상한 규제’ 등 정책 불확실성도 여전

반대로 국회가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과 일반 지주회사의 인터넷 은행 사업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기로 결단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 경우 규제 완화의 수혜 기업이 사실상 KT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통신 기업인 KT는 기존 양대 인터넷 은행 중 하나인 케이뱅크 지분을 현 은행법상 한도인 10%만큼 보유했지만 지배력 확대를 위해 은산 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참여연대 등 진보 진영이 인터넷 은행의 은산 분리 완화를 ‘KT 특혜 법’이라고 콕 짚어 비판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KT도 케이뱅크 주식 추가 확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금융 당국 심사에서 대주주 부적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KT는 과거 지하철 광고 입찰 과정에서 담합했다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2016년 벌금형이 확정돼서다.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10% 초과해 보유하려면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최근 5년간 법령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KT는 가벼운 사안인 만큼 봐달라고 한다”며 “대주주 부적격 여부는 앞으로 금융위원회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가 지난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이 규제 문턱이 낮아진 인터넷 은행 사업에 선뜻 뛰어 들었다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 여당이 전면에 내세운 정재호 의원 법안에는 인터넷 은행의 대출 금리가 금융위가 정하는 평균 금리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처럼 기업의 가격 책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이야기다. 같은 당 김관영 의원 발의안의 경우 금융위가 인터넷 은행 인가를 5년마다 재심사해 요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인가를 아예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고 있다. 정부 규제로 인한 사업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은 기업이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져 은행의 역할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고 대기업이 지금도 보험·카드사 등 2금융권 회사를 보유한 만큼 은행업을 하겠다는 대기업이 많을 것 같진 않다”면서도 “대기업 진입 규제를 풀어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이나 그럴 경우 투명성 확보라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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