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살 뻗친 日·흔들리는 닛산…카를로스 곤 탈주극이 남긴 것

“레바논서 재판 받겠다” 명예회복 노리는 곤 전 회장
실적 악화 시달리던 닛산, 곤 사태로 좌불안석
  • 등록 2020-01-10 오전 2:09:55

    수정 2020-01-10 오전 8:42:44

△9일 일본 도쿄의 거리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나로서는 신뢰하고 있던 상사로부터 또다시 배신당한 기분이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으로부터 쿠데타의 주역으로 지목받은 사이카와 히로토 전 닛산 사장은 9일 기자들과의 만난 자리에서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 정도라면 일본에서 얘기해도 될 내용으로 재판에서 유죄가 될 것이 두려워 도망친 것이 아닌가”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별배임, 보수 축소 신고 등의 혐의로 일본 검찰에 기소당해 보석 상태에 있다가 레바논으로 도망친 곤 전 회장이 가진 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지켜본 일본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닛산에서 르노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닛산 일부 경영진과 일본 정부의 음모라고 규정하고, 일본에서는 정의로운 사법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 사법당국은 망신살이 뻗쳤고 닛산도 간신히 봉합한 내분이 다시 불거질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레바논서 재판 받겠다” 명예회복 노리는 곤

일본 사법당국은 현재로서는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태다. 인터폴(ICPO·국제형사경찰기구)은 일본정부의 요청을 받아 레바논에 적색수배(국제체포수배서)를 내렸다. 그러나 인터폴의 적색수배는 체포 요청이 아니어서 반드시 가맹국이 용의자를 구속해 인도할 의무는 없다. 게다가 일본과 레바논은 범죄인 인도협약을 맺지 않은 상태로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의 신병을 인도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곤 전 회장이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인터폴 수배가 내려진 이상, 언제든지 체포돼 일본에 강제송환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레바논을 떠나 다른 나라로 떠나는 건 엄두도 내기 힘들다.

곤 전 회장은 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현재 배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르노·닛산 회장 재임 당시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린 자신의 결혼 피로연 비용 약 5만유로(7000만원)를 르노 측에 부담시킨 혐의다. 곤 전 회장은 이 비용을 르노 측에 되돌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공소가 제기될 경우 르노 전 회장이 법원에 출정하지 않으면 프랑스는 레바논에 신병 인도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기업가로서의 생명은 사실상 끊겼다. 재임 시절 막대한 보수를 챙긴 탓에 160억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몰수 당하고 앞으로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막힌다고 해서 생계 걱정은 없다. 책을 출판하는 등 다른 방향에서 대외 활동도 모색 중이다.

다만 다시 경영자로서 일선에 서기 위해서는 재판을 통해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곤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레바논에서 재판을 받고 싶다고 밝혔다. 곤 전 회장의 레바논 변호사는 이는 일본에서의 재판을 협력·양도받는 것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레바논과 일본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협약은 없지만, 양국 모두 국제연합(UN) 부패 방지 협약 서명국으로 용의자를 재판할 수 있다. 레바논 정부는 이미 2018년 11월 곤 전 회장이 체포됐을 당시 곤 전 회장의 신병을 양도받아 자국에서 심판하겠다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실제 곤 전 회장은 탈출 열흘 만에 프랑스 파리의 홍보 대행사를 통해 60여개 언론사 100명의 기자들의 모아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레바논에서 자란 후,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는 곤 전 회장은 약 2시간 반가량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까지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고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곤 전 회장이 자신에 비판적인 일본 언론들을 배제했다며 일본 기자와 곤 전 회장 간에 설전이 벌어지는 장면도 연출됐다. 60여개 언론사 중 기자회견 참석이 허락된 일본언론은 도쿄TV·아사히신문과 출판사 쇼가쿠칸 3곳에 불과했다.

곤 전 회장은 “회견에 출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에 기반해 보도하고 있는 매체다. 다른 매체는 닛산과 검찰 당국의 말을 분석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내보내고 있어 객관성이 없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기자회견 전부터 곤 전 회장은 폭스 비즈니스 기자와 만나 “일본 정부의 관여를 증명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군불때기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실제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된 직접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의 이름 역시 “레바논 정부가 (나의) 보호를 어렵게 하는 것은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에 일본 정부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모리 마사코 법무상은 9일 새벽 0시 40분 기자회견을 열고 곤 전 회장에 대해 “도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외를 향해 우리나라(일본)의 법 제도와 운용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고의로 퍼뜨리는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며 “곤 피고는 혐의가 있는 경제 범죄에 결백하다고 말할 게 있으면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제도 아래 정정당당 무죄를 증명했어야 했다”고 비난했다.

실적 악화 시달리던 닛산…곤 사태로 좌불안석

닛산은 간신히 봉합 국면에 들어간 ‘카를로스 곤’ 스캔들이 이번 곤 전 회장의 일본 탈출로 다시 불거지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곤 전 회장이 체포된 2018년 11월 이후 닛산은 그야말로 진흙탕을 걸어왔다. 르노와의 갈등이 불거지고 평판 리스크가 커진 탓에 안 그래도 부진했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수도권에 있는 닛산 판매 담당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2018년 11월 곤 전 회장의 체포 이후 ‘안심하고 차를 살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곤 스캔들은 브랜드 훼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당시 전 세계 1위였던 르노·닛산이 자신을 해임한 이후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실제 곤 전 회장이 회장이 재임한 2017년 당시 닛산의 순이익은 7469억엔에 달했으나 2018년 3191억엔, 2019년 1100억엔으로 추락했다.

반면 일본 내에서는 곤 전 회장의 공격적이고 팽창주의적인 경영이 닛산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신흥국에 공격적인 시설 투자를 하면서 신차 투입 시기를 놓쳤고 이는 비용 증가와 전반적인 매출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닛산은 가동률이 부진한 공장들을 정리하고 전 세계 직원 10%에 해당하는 1만 25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르노와의 흔들리는 동맹관계를 회복하고 부패로 얼룩졌다는 회사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닛산은 경영진을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곤 전 회장이 쿠데타의 주역으로 지목한 닛산 경영진 중 상당수가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이다. 최고경영자(CEO)에는 미쓰비시 출신인 우치다 마코토 전무 집행위원이 임명됐다.

닛산에게 곤 전 회장은 ‘망령’일 수밖에 없다. 닛산 요코하마 공장에서 일하는 한 50대 남성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회사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 경우 구조조정, 임금 삭감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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