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 경제학 만든 건 "나는 못 생겼다"

경제학 쥐락펴락한 14인 영욕의 순간
거짓말 저서로 고소당한 드러커
리먼사태 후 욕쟁이 된 크루그먼 등
업적에 영향 미친 사생활·스캔들 파헤쳐
20세기 경제이론, 수치 대신 일화로 정리
………………………………………………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
히가시타니 사토시|416쪽|부키
  • 등록 2014-06-19 오전 7:29:01

    수정 2014-06-19 오전 7:49:27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경제학사에 자신이 있다면 여기 퀴즈에 한번 도전해보라.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 강연회에서 경제학을 향해 악담을 퍼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폴 크루그먼(61)이다. 그가 누군가. 위기의 순간마다 마법 같은 경제처방전을 연달아 히트시킨 이다. 그런 그가 “최근 30년 현대경제학은 좋게 말하면 깜짝 놀랄 정도의 무기력함을 드러냈으며, 나쁘게 말하면 사실상 가해자인 채로 계속 지내왔다”고 폭로해버린 것.

두 번째 퀴즈. 어린시절부터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시절 수학낙제생을 면치 못한 경제학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다. 그는 또 누군가. 현대경제학에서 도저히 빼놓고 갈 수 없는 산이다.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란 저서로 죽어서까지 세계경제나 국가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런 그가 평생 시달린 게 있으니 “나는 못생겼다”는 자책 아닌 자책이란 것.

아무리 천재적인 경제학자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영욕’은 있는 법. 그나마 여기까지는 ‘영’에 해당한다. 이들의 ‘욕’은 이제부터다. 크루그먼은 빛나던 통찰 따윈 내다버린 듯 엉뚱한 판단으로 망신을 자처한 적이 있다. ‘IT기술 발전은 생산성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은 것.

‘못난이’ 케인스에게도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었다.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봤다는 거다. 불황의 원인을 수요에서 찾은 그는 소비·투자를 끌어낼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뉴딜정책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1970년대 불황에 물가상승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다. 더 이상 힘을 못쓰게 된 것이다. 사생활에 붙은 딱지도 있다. 동성애자. 이튼스쿨 시절 친밀하게 지냈다고 알려진 버나드 스위딘 뱅크가 뒤늦게 관계를 부정했고, 발레리나와 결혼까지 했지만 호사가들의 입방정은 케인스가 유명세를 치르면 치를수록 불이 붙었다.

누가 경제학을 고도의 수학으로 무장한 이성적 학문이라고 하는가. 일본 경제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바로 이 문제의식에 깃발을 꽂았다. 경제학이란 것도 결국 개인의 인생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받게 돼 있다는 거다. 그 근거를 대기 위해 20세기 경제학의 운명을 ‘들었다 놨다’ 한 학자 14명을 불러들였다. 케인스·크루그먼을 비롯해 계획경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케인스에 평생 맞선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정보경제학의 대가로 불리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내로라하는 경제학자가 모였다.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이들도 있다. 가족·자살경제학을 주도한 게리 베커, 주택거품 붕괴를 예언한 로버트 실러 등. 14명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견고한 그들의 경제이론 이면에 단단한 수학이 아닌 개성있는 사생활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 경제학은 그들의 성향과 기질의 가짓수만큼 갈래가 나뉘어 있었다.

▲모든 이론엔 사생활이 있다

14명의 줄은 케인스를 기준으로 세웠다. 케인스를 따랐는가 반대했는가에 따라 양쪽으로 나눴다. 폴 새뮤얼슨, 존 갤브레이스 등 미국 케인스학파를 한편에, 케인스에게 목숨 걸고 덤빈 밀턴 프리더먼과 베커 등 신고전학파를 다른 편에 세웠다.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 등은 신케인스학파로 다시 묶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시기. 이 불확실성 시대의 구원자는 단연 케인스였다. 고용을 창출하는 총수요가 반드시 완전고용을 달성할 만큼 국민소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안일한 수량화나 합리적 해석에서 나아간 ‘불확실성의 경제학’이란 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케인스의 불확실성이 나온 배경을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유럽 붕괴를 직접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막대한 혜택을 누렸던 세계를 잃어버린 탓이라고. 다시 말해 젊은 엘리트였던 그가 불확실한 미래를 뚫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위기감에서 새로운 경제학을 구상하게 됐다는 얘기다.

현대경제학이 이룬 성과는 이들의 사생활에 빚졌다. 왼쪽부터 폴 크루그먼, 피터 드러커, 존 메이너드 케인스(사진=부키).


▲경제학은 ‘범죄’에도 성립한다

1960년대 컬럼비아대에서 경제이론 시험이 있던 날. 베커가 고민에 빠졌다. 차를 어디에 세울 건가. 주차장까지 가면 늦을 게 뻔하고 길가에는 주차위반 딱지를 떼일 위험이 있다. 고민 끝에 베커는 길가에 차를 두고 시험장에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딱지는 붙지 않았다. 그런데 베커는 갑자기 어떤 섬광을 느낀다. ‘범죄의 경제학’이란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때를 시작으로 베커는 지난달 별세할 때까지 ‘경제학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불렸다. 경제학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단 뜻이다. 실제 그는 경제학에 수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인종차별·결혼·마약·자살 등 온갖 사회현상을 해명하는 일에 사활을 걸었다. 가족의 경제적 효용을 따지고 교육의 수익률을 계산했다. 저자는 그 배경에서 베커의 아내가 자살한 불행을 찾아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어

경제계에 마케팅과 민영화라는 화두를 던진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그루란 칭송까지 받으며 ‘영’을 누렸다. 하지만 그가 저서에 수시로 거짓내용을 담아 고소나 항의를 받기 일쑤였다는 ‘욕’의 얘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명의 학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뒤늦게 ‘영’을 맞은 이도 있다. 하이먼 민스키. 그는 생전 주장한 금융불안정성 가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목을 받으면서 되살아났다.

경제사는 단순히 경제학의 역사가 아닌 것. 책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저자의 노고가 곳곳에 배어 있다. 덕분에 경제학자 14명의 부침은 인류가 갈 길을 그려낸 내일의 지도로 다시 제작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영광은 물론 패배에까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어디 경제학에만 해당되겠는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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