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일간 '안전 불침번' 선 처음이자 마지막 안전처 장관

박인용 안전처 초대이자 마지막 장관 퇴임
이임식 없이 마지막날까지 상황보고 받아
취임이래 2년 8개월간 귀가 않고 비상대기
  • 등록 2017-07-26 오전 6:00:00

    수정 2017-07-26 오전 6:00:00

[세종=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국민안전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관이 25일 퇴임했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등에 업고 3년 전 취임했던 박인용 장관은 이날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안전처를 해체하고 안전관리 기능을 행정자치부로 다시 되돌려 행정안전부로 개편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국민안전처 제공)
박 장관은 평소처럼 오전 8시30분, 오전 11시 상황보고회의까지 마무리한 뒤 이임식조차 없이 가방 하나만 챙겨 든 채 세종정부청사 장관 집무실을 떠났다. 청사 밖을 나선 박 장관은 청사 앞에서 대기 중이던 개인 차량을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박 장관이 마지막 날까지 업무보고는 챙기면서도 이임식조차 치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장마철 폭우와 여름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장관 부재로 인한 기강해이와 행정 공백을 우려한 때문이다.

박 장관은 2014년 12월 5일 취임한 이래 하루도 안전처를 떠나지 않았다. 집무실에서 10분 거리 오피스텔에 방을 구해 먹고 잤다. 광화문 서울청사 때도, 세종시로 이전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964일이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서 출근해 매일같이 업무를 챙겼다. 점심, 저녁 약속 있는 날에도 광화문 청사 인근에서 손님을 만났다. 간혹 술자리가 생겨도 술 대신 콜라를 마시며 양해를 구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르는 데 안전처 장관이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청와대에서 휴가 독려차원에서 의무적으로 모든 장관도 휴가를 떠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도 3박 4일짜리 휴가를 내긴 했지만 매일 안전점검상황보고를 받으며 언제든 대형사고가 터지면 한시간 내에 집무실로 뛰어갈 수 있는 지역을 맴돌았다.

박 장관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 안전처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했던 결심을 지켰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격무와 쏟아지는 비난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하루에 1~2시간밖에 못 자는 날도 있었다.

그는 “묵묵히 관련 법안과 제도를 만들고 손질하는 데 집중했다. 현장에서는 훈련을 반복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훈련을 반복해 몸에 배어야 긴급상황이 발생해도 허둥대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무너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급조한 부처의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자체 대상 안전점검 때는 “무슨 권한으로 안전점검을 하는 거냐?”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안전관련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왔다. 정부-지자체 협업으로 언제 어디서나 안전시스템이 가동되도록 구축하는 게 목표였다”고 돌이켰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자연재난 위험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사회재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상황에 매번 놀리기 보다는 재난 예방에 힘을 쏟고 위기 상황에서 의연하게 대응하는 국민적 모습도 필요합니다.”

그는 지리산에 30㎡ 남짓한 작은 오두막 한 채를 빌렸다. 그리고 집무실 창가 소박하게 꾸렸던 서재를 옮겼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도 마음도 비워낼 계획이라고 했다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삼경(四書三經)과 함께 성경일독에 도전해볼 계획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연말까지는 지리산에 머무르게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 덕분에 장관 소임을 잘 마쳤습니다. 고마운 마음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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