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숙현에게 '그곳'은 지옥이었다

세상을 등진 23살 유망주..외뤄웠던 싸움
뒤늦게 알려진 최숙현 선수 사건에 공분
경주시청팀 피해자 또 있다..이용 의원의 폭로
문 대통령, 고 최숙현 사건에 스포츠인권 강화 지시
  • 등록 2020-07-03 오전 12:20:00

    수정 2020-07-03 오전 7:20:31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상습적 폭행과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당시 23세) 선수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커지고 있다.

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메시지 (사진=연합뉴스)
◇ 폭행·협박·성희롱까지…故 최숙현 선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최숙현 선수는 지난달 26일 부산의 실업팀 숙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어머니에게 보낸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였다.

고인은 경주시청 소속일 때 감독만큼이나 무서운 팀닥터와 선배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최 선수 등 3명은 지난 1월 경주시청 김 감독과 팀 닥터, 선수 등을 경찰에 고소했지만 피고소인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최 선수를 고립시켰다. 이에 최 선수는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쉽지 않았고, 동료들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외로움은 더욱 커졌다.

4월에는 대한철인3종협회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호소했지만 기민하지 못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먼저 분리하고 선수와 가족을 안심시켜야 했지만 성폭력 사건과 달리 그런 메뉴얼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일 공개된 최 선수의 훈련일지와 녹취록을 살펴보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지옥의 팀이었다. 체중조절에 실패했다고 사흘 동안 굶게 하고 신발과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고 맞는 선수를 보면서 찌개 끓이는 감독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했다.

최 선수는 팀닥터를 향해 ‘금전적인 문제’도 제기했다.

고인은 생전에 “팀닥터는 2015, 2016년 뉴질랜드 합숙 훈련을 갈 당시, 정확한 용도를 밝히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 2019년 약 2개월간의 뉴질랜드 전지훈련 기간에는 심리치료비 등 명목으로 고소인에게 130만 원을 요구하여 받아 간 사실도 있다”며 “(영향력이 있는) 팀닥터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고, 정확한 용도가 무엇인지를 더는 물을 수 없었다. 팀닥터가 요청하는 금액만큼의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고인과 고인 가족 명의 통장에서 팀닥터에게 이체한 총액은 1500여만 원이다.

이번 사건은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의 폭로로 세사엥 알려지게 됐다. 이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행에 시달렸다는 추가 피해자들이 더 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 달간 10일 이상 폭행을 당했다. 심지어 자살하도록 만들겠다는 폭언까지 한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2013년 해양스포츠제전 참가한 최숙현 선수 (사진=연합뉴스)
◇ 폭행당하는 최숙현 옆에서 감독은 비지찌개를 끓였다


최 선수의 녹취록이 공개된 후 관련된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 선수의 한 지인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려 “23살의 어린 선수가 그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하늘에 별이 되어 떠났다”라며 “(팀닥터가) 슬리퍼로 얼굴을 치고 갈비뼈에 실금이 갈 정도로 구타했고 식고문까지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참다못해 고소와 고발을 하자, 잘못을 빌며 용서해달라는 사람이 정작 경찰조사가 시작되니 모르쇠로 일관하며 부정했다”며 “최숙현 선수는 이런 고통과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관계자들을 일벌백계 하고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폭언과 폭력을 근절하고, 고통받고 있는 젊고 유능한 선수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이같은 청원글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현재 최 선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원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미래통합당 정희용(왼쪽부터), 김예지, 이용, 김석기, 김웅 의원이 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숨진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진상조사를 위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건 맡은 대구지검 “최대한 신속·엄정 처리”


트라이애슬론은 종목 특성상 선수 개인을 극한의 상태로 몰아간다. 종목마다 거리 차이가 있지만 올림픽 표준으로 채택된 방식을 보면 선수들은 수영(1.5km), 사이클(40km), 달리기(10km)를 수행해야 한다.

총 51.5km의 거리를 남자 선수들의 경우 1시간30분대, 여자 선수들은 1시간 50분대에 주파한다. 이럴 경우 사이클은 평균속도 시속 48km를 넘나들고 달리기 10km 기록이 전문 육상선수들과 비교해서 2~3분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다.

한 관계자는 “0.01초를 단축하기 위해 선수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스포츠다 보니 단합이라는 명목으로 훈육이 자주 행해진다. 특히 정상급의 선수는 기록 단축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선수를 몰아붙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은 경주시 직장운동경기부로 경주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며 관리는 경주시체육회가 맡고 있다.

경북 경주시체육회는 최 선수의 사망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가혹행위 당사자로 지목된 감독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생전 최 선수의 고소로 이 사건을 수사해 온 경주경찰서는 지난 5월29일 경주시 철인3종 경기 감독과 팀닥터, 선배 선수 2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감독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과 강요·사기·폭행 혐의를, 팀닥터와 선배 선수 2명에 대해서는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 “故 최숙현 사건, 재발 없도록 대책 주문”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와 관련해 “경기인 출신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나서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폭력 신고를 접수한 날짜가 지난 4월 8일이었는데도 제대로 조치가 되지 않아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은 정말 문제라고 문 대통령이 지적했다”고 전했다.

강 대변인은 또 “문 대통령이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인 최윤희 문체부 차관이 나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겨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향후 스포츠 인권 관련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도 지시했다”고 했다.

이처럼 인권은 무시한 채 권위만 앞세웠던 삐뚤어진 문화가 젊은 선수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다. 이를 방조한 한국 체육계와 트라이애슬론도 귀한 선수를 잃게 됐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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