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관리하다 선거철 되면 사퇴…"낙하산중 최악은 정피아"

[공공기관 대해부]①반복되는 낙하산 논란
정치 스펙 쌓는 정거장 된 공공기관 신세
국민연금·가스안전公 등 수개월 경영공백
‘실세 기관장’ 기대했는데 경평 최하등급
“정권말 막차 타자” 낙하산 투하 진통 우려
  • 등록 2020-04-21 오전 5:00:00

    수정 2020-04-21 오전 10:07:34

이강래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출마를 앞두고 1500여 명의 톨게이트 수납원 집단해고 및 복직 문제로 물의를 빚었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는 매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경영평가를 진행합니다.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한 성적표입니다. 공공기관은 공정하고 균형적인 인사, 일자리 창출, 산업안전 등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한발 앞서 구현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이데일리는 공공기관 경영 실태를 한발 앞서 진단해 보는 기획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김상윤 김소연 기자] “일반적으로 공직 출신 공공기관장이 제일 일을 잘합니다. 민간 기업이나 군대 등에서 조직을 통솔해본 분들은 두 번째죠. 정치인 출신 공공기관장이 제일 문제입니다. 이분들은 공공기관장을 자신의 정치 경력과 스펙을 쌓기 위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장(공기업 부문)을 맡았던 신완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는 “정권말 정치인 낙하산이 우려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교수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를 비롯한 함량 미달 낙하산이 공공기관장을 맡게 되면 경영공백·차질, 특혜 시비, 노사 갈등까지 후유증이 일파만파라고 우려했다.

20일 이데일리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토대로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362곳(부설기관 23곳 포함)을 전수조사한 결과, 4·15 총선 출마 등으로 이미 공석이거나 연말까지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이 69곳(19%)에 달했다. 공기업 2곳, 부설기관 7곳, 준정부기관 18곳, 기타공공기관 42곳이다. 재직 중인 기관장 중 56명(15%)은 문재인 대선캠프·더불어민주당이나 국회의원·보좌관 출신 등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선거 때까지만 …뜨내기 기관장에 경영공백 심각

20일 이데일리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현직 기관장의 총선 출마로 기관장 자리가 공석인 곳은 한국문화정보원(12월)·국민연금공단(1월)·한국가스안전공사(1월)·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1월)·대외경제정책연구원(1월)·한국여성정책연구원(3월) 등 6곳이다. 이들 기관은 길게는 수개월째 기관장 공석 상태다.

이중에서도 한국도로공사(이강래 전 민주당 원내대표), 국민연금공단(김성주 19대 국회의원), 중소센터기업진흥공단(이상직 19대 국회의원), 가스안전공사(김형근 전 민주당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에는 정치인 출신 기관장이 내려왔다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임기 중 중도사퇴하면서 경영공백이 발생한 곳들이다. 이들 중 김성주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이상직 전 중소기업센터진흥공단 이사장은 21대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았다.

조양석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선임 절차·시간을 고려하면 올여름이 지나도록 기관장이 없는 경영공백 상태가 이어진다”며 “공공기관의 새로운 정책 사업을 힘있게 추진하려면 기관장 리더십이 중요한데, 추진 동력이 부재한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공공기관들은 총선 이후 쏟아질 정치인 낙하산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당내 경선이나 총선에서 낙선한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 때까지 경력을 쌓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기관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장의 경영능력, 전문성을 1순위로 보고 임명하는 게 아니라 보은 인사를 하면 논란이 불어질 수밖에 없다”며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능력보다 자기 사람을 챙기는 인사를 하고 있어 공공기관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362곳(부설기관 23곳 포함) 중 이미 공석이거나 연말까지 기관장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수가 69곳이나 된다.

부처별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통연구원 등 국무조정실 산하기관이 10곳으로 가장 많이 교체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적십자사, 국립암센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등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장도 9명 바뀐다.

이어 강원랜드 등 산업통상자원부(7곳),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과학기술정보통신부(6곳),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고용노동부(5곳),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문화체육관광부(5곳),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국토교통부(5곳), 국립공원공단 등 환경부(3곳),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등 해양수산부(2곳), 한국산업은행 등 금융위원회(1곳) 순이었다.

정치인 출신 기관장 경영평가 낙제점

공공기관에서는 정치인 낙하산을 피하기 어렵다면 힘있는 현직 정치인 출신이 그나마 낫다는 반응도 나온다. 예산 편성 때 유리할뿐더러 국정감사 때도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있어서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문재인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윤 행장 취임 이후 기업은행이 금융감독 당국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 행장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이후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드물지만 정치인 출신 기관장이 우수한 성적표를 거둔 곳도 있다. 김용익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2017년 말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표적이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경영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특히 경영관리부분 상대평가에서는 준정부기관 중 유일하게 S등급을 받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 교수를 거쳐 보건복지부 공적노인요양보장추진기획단 위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보건행정 전문가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재부나 주무부처로부터 예산·인원을 제대로 따오려면 기관장이 정부에 힘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낙하산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실세 정치인이 오는 게 낫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인 출신 기관장들은 현장 경험과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경영 성과는 신통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경영평가 결과에 따르면 ‘정피아’ 논란을 야기했던 기관장이 맡은 공공기관 중에서 S(탁월)·A(우수) 등 상위등급 평가를 받은 곳은 거의 없다.

관련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치인 출신 기관장들은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꼼꼼히 챙기지 못해 부실경영 후유증이 나타난 경우가 많다”며 “선제적인 경영평가, 감사를 통해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으면 상처가 곪아 터지게 된다”고 말했다.

가스안전공사를 비롯해 국립공원관리공단(권경업)·한국콘텐츠진흥원(김영준)은 종합평가 C 등급을 받았다. 도로공사·국민연금공단·중소센터기업진흥공단은 종합평가 B 등급에 그쳤다. 부문별 평가점수는 더 나쁜 경우도 있다. 경영관리 부문(절대평가)에서 가스안전공사는 최하 등급(E)을, 콘텐츠진흥원은 D 등급을 받았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말 보은 인사로 업무에 문외한인 낙하산이 임명되면 공공기관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전문성·역량 있는 기관장이 임명되도록 심사를 강화하는 등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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