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핀 들꽃 한가득...아름다움을 '먹'음다

수채화 꽃잎과 둘러싼 진한 '먹' 깊이감 더해
이번 신작부터 먹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
흑백 대비로 들꽃 화사함·생명력 극대화
  • 등록 2021-08-31 오전 7:00:00

    수정 2021-08-31 오전 7: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맨드라미, 붓꽃, 채송화 등 친근한 들꽃이 화면 안에 가득 흐드러져 펴 있다. 눈을 사로잡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창한 봄날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수채화로 그려낸 탓에 그림이 자칫 가벼워 보이진 않을까 우려도 든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꽃잎과 꽃을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번져있는 진한 먹이 화려한 꽃과 대비되며 작품의 깊이감을 더해준다. 한국 수채화의 대가다운 내공이 잔뜩 묻어나는 작품이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은 수채화 대가로 불리는 정우범(75) 화백 개인전 ‘판타지아’를 지난 25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정우범 ‘환타지아’(Fantasia·2021), 78x58.5cm, 종이에 수채(사진=선화랑)
정 화백은 30년 이상 수채화가로 활동해왔다. 수채화는 일반적으로 유화나 아크릴에 비해 가볍다는 평가를 받는다. 흔히 어린 시절 학교에서 수채화는 다뤄본 경험도 있어 쉽게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다. 정 화백은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독보적인 수채화 작품을 그려왔다. 최근 선화랑에서 만난 정 화백은 “수채화로도 얼마든지 유화보다 뛰어난 작품을 그릴 수 있다”며 “작품성의 문제지 재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 화백은 스스로 만들어낸 수채화 기법과 붓을 통해 독특한 화풍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채화용 고급 종이를 물에 적신 뒤 직접 제작한 붓 끝에 수채화를 묻혀 종이 위에 툭툭 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이때 색은 종이 사이사이로 깊숙이 스며든다. 종이가 마르면 안료는 종이에 염색이 되듯 착색된다. 작가는 이것을 “색을 종이의 모세혈관까지침투시키는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이 과정은 변색, 탈색이 필연적인 종이의 취약점까지 보완할 수 있다. 이재언 미술평론가는 정 화백의 수채화 작품을 두고 “한국 수채화는 정우범 전과 후로 나뉜다”고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번 신작에는 여기에 더해 먹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흑과 백의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서당 훈장을 하신 아버지 덕에 먹에 친숙했기에 자유자재로 표현도 가능했다. 어둠, 심오함이 함축된 먹은 들꽃의 화사함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그와 대비되는 백색은 각자의 색을 뽐내며 피어오른 꽃들의 생명성과 희망적인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또 작가는 “흑과 백은 상반되는 대치상태가 아닌 조화로운 삶과 환경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정 화백 작품의 오랜 주제는 자연, 그중에서도 꽃이다. 화백은 장미, 작약 등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이름 모를 소소한 들꽃과 풀들에 더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화려한 꽃은 어쩐지 괴리감이 드는 반면, 주변의 소소하고 상투적인 소재에 오히려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야생꽃과 풀의 강한 생명력은 보는 사람들도 더욱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릴 적 기억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산골동네에서 자라며 워낙 꽃을 좋아했다”며 “또 교편생활을 했던 큰 형이 일본에 다녀오면서 꽃 사진 책자를 사왔다. 당시 컬러로 인쇄된 꽃 사진이 그렇게 아름답고 이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랫동안 꽃 그림을 고집해 왔는데 질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겨우면 진작에 바꿨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나의 소재로도 무궁무진하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꽃이 한 개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풀꽃으로 그림을 그리니 무궁무진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화면안 배치만 달리해도 구태의연한 그림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우범 ‘환타지아’(Fantasia·2021), 245x123cm, 종이에 수채화(사진=선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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