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달]고위공무원 "난 이렇게 익숙한 것들과 결별했다"

업계 점심·저녁 약속 끊고, 산하기관 편의 사라져
'더치페이' 선언했지만 기자들과는 약속 자제
공무원들 만나면 "시범케이스 조심하자" 분위기
"법 취지에 공감..애매한 부분, 연말 약속 난감"
  • 등록 2016-10-27 오전 5:00:00

    수정 2016-10-27 오전 5:00:00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나는 세종시 A 정부부처에 근무 중인 50대 고위공무원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한 달째. 시끄러웠던 것만큼 세상이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일상은 변했다.

업계나 산하기관과의 식사는 뚝 끊었다. 예전에는 이들이 오전 11시30분 전후로 나를 줄곧 찾아왔다. 그러면 맛집이 많은 세종시 외곽이나 공주로 1시간 넘게 오찬을 갔다 왔다. 계산은 그들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식사 때 피해서 와달라”고 미리 얘기해 뒀다. 불가피하게 식사 때와 겹쳐도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지난 한 달간 다이어리에는 사무관 등 직원들 밥 사준 내역만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산하기관에서 제공 받던 각종 ‘편의’도 사라졌다. 그동안 현장점검을 하면 산하기관에서 공용차를 지원해줬다. KTX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더라도 역에서 현장까지 1시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이번 달부턴 부처 직원들이 차를 끌고 먼저 내려가 나를 기다린다. 현장 점검·회의도 줄였다. 산하기관들에는 “세종시로 올라와서 보고하라”고 했다. 일단은 서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다.

나머지 애매한 성격의 모임은 미루거나 피했다. 불가피하게 가더라도 식사 전에 “나는 더치페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막상 기자들로부터 “더치페이”라는 말을 들을 땐 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익숙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자들과 개인적인 점심·저녁 약속은 자제하고 있다. 다른 부서·부처도 ‘구내식당 오찬간담회’만 진행 중이다. 내가 먼저 튈 필요는 없다.

주변 고위공무원 친구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부담스러운 약속이 줄어서 좋은데 법 위반인지 애매한 상황이 있다는 지적이다. 캔커피를 준 게 신고됐다는 뉴스를 보고선 깜짝 놀랐다. 국무회의 전후로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을 상대로 한 장관들의 ‘Q&A’도 한창이라고 한다. 때론 불편하고 답답해도 고위공무원이 시범케이스로 걸리는 ‘최악’ 상황만큼은 피해야 한다. 요즘엔 “애매하면 만나지 말고 만나면 더치”라는 말만 되뇐다.

점점 연말이 다가온다. 미뤘던 약속을 어떻게 할지 솔직히 난감하다. 분명히 김영란법은 만남 자체를 피하라는 게 아니다. 김영란법 1조(“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요즘엔 저녁 좀 드세요? 어떠세요?”라고 묻게 된다. 예산안·법안 검토로 야근 중인 나는 이 같은 만남이 소통일지 부정청탁일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기사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과의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정부세종청사로 출입하고 있다.(출처=이데일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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