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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공연시작이 늦어지고 있다. 이유는 ‘관객배치’. 밀려든 관객들을 규모 있게 앉히려는 극단 측이 분주하다. 120석 남짓 지하 소극장이 꽉찼다. 계단과 무대 앞까지 보조석으로 채웠다. 10여분이 지났다.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32년 만에 중부지방부터 장마가 시작됐다는 날 아닌가. “이 정도쯤은 뭐. 궃은 비도 마다않고 왔는데….” 관객들의 표정이 곧 대사다.
기다리는 동안 윤우영 심사위원과 빈 무대를 바라보며 저렴한 장치와 세트에 대해 얘기했다.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 오해는 곤란하다. 부실하다는 게 아니다. 실용적이란 얘기다. 연극 특히 창작극이 당면한 ‘지독한 가난’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그새 객석이 정리됐다. 불 꺼지기 직전 고개를 돌려 구석에 비집고 앉은 김광보 연출을 잠시 봤다.
극은 조련사를 놓고 각자의 생각을 끊임없이 설파하는 과정이다. 그들의 머리에 조련사는 없다. 입장만 있을 뿐이다. 의사에게 조련사는 ‘코끼리를 사랑한 성도착자’로, 형사에겐 ‘선거판 배후조작 인물’로 어머니에겐 ‘모든 속박을 풀어내려는 자유인’으로만 존재한다. ‘아닌데…’로 일관하던 조련사는 결국 항변을 포기한 채 코끼리가 되기로 한다.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러 나왔다. 유독 왜소해 눈에 더 띄는 조련사 윤상화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의 연기력은 차라리 타고났다고 해야 한다.
공연장 밖. 빗소리가 묻히고 있다. 코끼리가 되지 못한 이들이 허공에 날리는 소음까지 막진 못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