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한국인①] "내 결정, 님이 해주세요"

스스로 선택 못하고 남에게 묻기만
포털 검색판, 개인고민 상담장 돼
"사상 최대 정보홍수·과잉기회 원인
망설이기만 하는 '썸' 현상 더 확대될 것"
  • 등록 2015-05-29 오전 6:17:00

    수정 2015-05-29 오전 7:36:19

이미지=이데일리 그래픽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리나요. 골라주세요.” “소개팅으로 세 명의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중 누구를 계속 만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회원분들께서 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10년간 인터넷동호회를 운영해온 문정대(41) 씨는 최근 2~3년 새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절감한다. 익명의 회원을 상대로 선택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조언을 구하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본인이 결정해야 할 일을 굳이 모르는 이들에게 물어보는 심리는 잘 수긍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행사직원 이진희(37) 씨는 홈쇼핑에서 여행상품 방송이 나간 후 상담전화에 대응하느라 진이 빠진다. 상품 자체에 대한 상담보다 어떤 날 떠나는 것이 좋은지 선택해 달라는 요청이 부쩍 많아져서다. 이씨는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알려줄 수 있지만 여행날짜까지 정해달라고 할 땐 난감하다”며 “개인 사정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일을 미루는 건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하고 남에게 묻기만 하는 이른바 ‘결정장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결정장애’에 빠진 이들은 대개 인터넷 공간의 불특정 다수에게 선택과 결정을 부탁한다. 무엇인가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불안해하거나 빨리 결단을 내리지 못해 시간을 허비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지식’을 묻고 답하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은 어느 새 개인고민을 상담하는 Q&A 게시판이 됐다.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 역시 ‘회원님’에게 선택을 부탁하는 글이 넘쳐난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선 ‘내 고민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묻고, 역술인을 찾아가 미래 결정을 의뢰하는 ‘전통의식’도 줄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정장애’ 현상의 원인을 정보가 너무 많아서 되레 독이 되는 ‘최첨단시대의 역설’로 진단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는 지난해 국내서 출간한 ‘결정장애 세대’라는 책을 통해 “주의력 결핍, 결단력 박약의 ‘메이비세대’가 생겨난 건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사상 최대의 과잉기회와 씨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찌감치 ‘결정장애’를 한국의 트렌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 교수는 SNS 등에 실시간으로 남에게 결정을 기대하는 문화현상을 ‘햄릿증후근’으로 설명하며 “끊임없이 망설이기만 하는 ‘썸’ 같은 현상이 더욱 대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큐레이션커머스나 개인컨설팅 등 다양한 배려형 서비스의 등장이 예고된다는 것이다.

최창호 사회심리학 박사는 핵가족화를 원인으로 봤다. 최 박사는 “사회가 핵가족화되면서 유사의존적 성격장애가 많아지다 보니 이런 현상이 심각해졌다”며 “마마보이, 파파걸, 헬리콥터맘 등이 모두 관련돼 있다. 입시 등에 치여 청소년기에 심리적 독립과 자립을 배우지 않고 성인이 된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결정장애’란

점심메뉴 결정부터 결혼·이혼까지 일상에서 흔히 결단을 내려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심리를 뜻하는 신조어. 결국 고민만 거듭하다가 스스로 결정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한다. 유사한 표현으로는 선택장애, 햄릿증후군, 메이비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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