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임기 반환점의 '중간 성적표'

  • 등록 2019-11-08 오전 5:00:00

    수정 2019-11-08 오전 5:00:00

어느새 2년 6개월의 세월이 흘러갔다. 온갖 구호와 정책을 앞세워 기세 좋게 달려온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전반부가 지나가면서 반환점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푸근한 성취감보다는 공허하고 썰렁한 분위기다. 처음 기대했던 모습과 너무 차이가 벌어졌다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취임 초기 80%를 웃돌던 국정 지지도가 반토막으로 꺾인 데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공감대가 엷어진 게 이번 ‘중간 성적표’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국가 미래에 대한 희망도 번지수를 잃은 채 떠돌고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의지만 간직했어도 이런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념과 진영으로 갈라져 길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되는 이유다.

더욱이 ‘조국 법무장관’ 사태에서 노출된 편향성은 ‘촛불 정권’의 의미를 스스로 허무는 처사였다. 입으로는 ‘정의’를 내세우면서도 눈길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내 편, 네 편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집착을 드러낸 것이다. 끝내 조 장관이 자진 사퇴에 이르렀고, 문 대통령도 유감을 표명했지만 앙금은 여전하다.

집권 초기 과거 정권의 적폐 단죄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으면서도 현 정권 내부의 잘못에 있어서는 관대하다는 사실도 중대한 오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시절의 ‘블랙 리스트’와 비교해 자신에 대해서는 ‘체크 리스트’라고 둘러댄 변명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기까지 야권의 잘못도 없지 않겠으나 근본 원인은 청와대를 주축으로 하는 여권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 분야의 실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기업 생태계에 극심한 혼란이 초래된 마당이다. 비정규직의 일률적인 정규직 전환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생산·투자는 떨어졌고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예 취직을 포기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니, 대통령 집무실에 걸어 놓았다는 ‘일자리 현황판’이 무색해질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얘기만 수시로 들려온다. 단순히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취지라 해도 현실과 동떨어진 접근이다. 결국 전력요금 인상으로 귀결되는 탈원전 정책이나 정시확대 논란을 둘러싼 교육제도 개선, 분양가 상한제까지 꺼내든 부동산정책 혼란도 마찬가지다.

‘평화경제’를 이루겠다며 북한과 관계개선을 꾀하는 노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척이 없이 마냥 겉돌기만 하는 북핵 협상부터가 그러하다. 오히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며 위협하는 태도다. 우리 정부를 따돌리며 굴욕적인 표현을 내뱉는 모습도 그리 새삼스럽지 않게 돼 버렸다.

이런 지경인데도 권력층 주변에 위기감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심각하다. “가장 잘못한 정책이 뭐냐”라는 추궁에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회 답변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잘못 판단할 경우 주변 참모들이나 내각에서 진언이 올라가야 하지만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 듯하다. 문 대통령이 인사에서부터 실패했다는 증거다.

이제 반환점에 이른 만큼 심판관이 기록판 앞에서 기다리는 결승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등산으로 치면 내리막길뿐이다. 더구나 사저 경호 예산이 배정되고 기록관 건립 얘기가 나도는 것을 보면 청와대 주변에서도 문 대통령의 퇴임 이후 준비에 들어간 분위기다. 그러나 퇴임 준비보다는 남은 임기를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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