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vs개저씨]②사랑과 혐오 사이, 갈림길에 선 중년 남성

  • 등록 2017-09-15 오전 6:00:00

    수정 2017-09-15 오전 6:00:00

이성민은 tvN 드라마 ‘미생’(2014)에서 합리적이고 인간미까지 갖춘 상사 오과장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사진=tvN)
[이데일리 김은구 기자] ‘아재vs개저씨’

중장년 남성들 앞에 놓인 두갈래 길이다. 선택을 회피하거나 미룰 수는 없다. 주로 젊은 세대들의 평가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따라붙어 버린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20~30대 젊은 층들은 아재에게서는 롤모델을, 개저씨에서는 교훈을 각각 찾는다. 직장인 강모(31·남) 씨는 “엇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회사 선배들이지만 두 부류로 갈린다. 닮고 싶고 좇아가고 싶은 선배들이 있는 반면 자리를 함께하기 싫을 정도로 ‘왜 저러나’ 싶은 선배들도 있다”고 말했다.

남자의 중장년 세대, 흔히 ‘아저씨’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부모와 항렬이 비슷한 남성을 뜻하는 단어다. 10년 넘는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남성들, 또는 적잖은 경험을 가진 남성들을 일컫는다.

아재나 개저씨나 모두 ‘아저씨’의 다른 말들이다. 어감부터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재’는 사전적으로 ‘아저씨’의 낮춤말이지만 젊은층 사이에서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개저씨’는 ‘개’라는 접두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소위 ‘꼰대’ 이미지를 극대화한 단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한민국은 세대간의 갈등이 심한 부분이 있다. 젊은 세대가 중장년을 볼 때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면도 있다”며 “아재와 개저씨의 구분은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점에 대한 젊은 층의 고민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정치권에서 다시 일어난 ‘아재’ 바람

“다이어트가 한국어로 뭔지 아세요? ‘내일부터’래요.”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민생행보를 하다 한 시민에게 이 같은 농담을 던졌다. ‘아재개그’다. 이 총리뿐 아니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아재개그의 대명사로 꼽힌다.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대국민 보고’에서 장하성 정책실장은 얼마 전 대통령이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한 것을 언급하며 “요즘 대통령 주머니를 채우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아재개그’가 다시 유행을 하고 있다. 걸그룹 마마무는 ‘아재개그’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해 유행을 대변했다. 나이에 관계 없이 자기관리가 잘된 남자를 뜻하는 ‘아재파탈’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아재’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남성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재개그’는 과거에도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최근 유행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권에서 먼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를 대중이 외면했다면 유행이 됐을 리 없다. 회자가 되고 있다는 건 대중이 이를 수용했다는 증거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이재원 한양대 겸임교수는 “‘아재개그’는 아재들이 아닌 젊은 세대가 만든 단어”라며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개그를 하려는 아저씨들에 대한 호의적인 표현이다. 아저씨들이 권위를 내려놓고 젊은 세대와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英 인디펜던트가 소개한 ‘개저씨’ 사례는?

‘개저씨’는 권위주의로 대변된다. 젊은 층과 수평적 개념인 소통이 아니라 수직에 가까운 상하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나는 이러하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다. 아재들의 ‘너희를 알고 싶고 우리는 이렇다는 걸 너희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사고방식과는 대척점에 서있다.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촛불정국에서 대통령 탄핵에 목소리를 함께 하기 위해 현장에 나온 젊은층, 청소년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던 극우단체들로 인해 개저씨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정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낸 김무성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지난 5월 일본을 다녀오면서 공항에서 자신의 수행원에게 캐리어를 밀어보내면서 일어난 일명 ‘노 룩 패스’ 논란은 영국 인디펜던트지를 통해 한국 ‘개저씨’의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인디펜던트지는 ‘개저씨’를 한국 아저씨의 악행을 비하하는 단어라며 중년 남성들로 대표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한다는 설명도 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32·여) 씨는 “20여년 전을 이야기하며 ‘나 때는 어땠는데’라고 후배들을 질타하는 상사들도 세상이 어떻게 변했다는 걸 감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끼리는 개저씨로 부른다. 회식자리에서 대놓고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라는 둥 성희롱성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상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개저씨에 대한 반감은 단순히 세대간의 적대감의 표현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며 “젊은층이 ‘나는 나이 들어서 저렇게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예고하는 문화로 인한 순기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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