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누가 리콴유 무덤에 침을 뱉으랴

  • 등록 2015-03-27 오전 3:00:01

    수정 2015-03-27 오전 10:13:19

인류 역사는 종종 아이러니컬한 민낯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거인도 현미경으로 들어다보면 긍정적 평가 못지않게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는 경우가 많다.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前)싱가포르 총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창조적 혁신가였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는 서울만 한 크기의 보잘 것 없는 도시국가였다. 그러나 그는 싱가포르를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 독립 당시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어촌은 지난해 5만6000달러로 세계 8위 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또 싱가포르를 세계적 금융·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켜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칭송받았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그러나 리콴유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 현실 정치에서 그의 스승은 청나라 학자 이종오(李宗吾)와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속마음’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이종오의 ‘후흑학’(厚黑學)에 빠진 그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 철학을 접하게 된다. 그는 국민의 사랑보다는 경외심을 택하라고 주장한 ‘군주론’을 믿고 반대세력에 철퇴를 가했다. 그가 31년 넘게 권좌를 지켰지만 ‘독재자’라는 주홍글씨를 떼어낼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이중성은 물리치기 힘든 욕망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미국이 20세기 최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도 비인권적이라는 수식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에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구절을 썼지만 노예제도를 용인했고 노예로 살던 흑인여성과 불륜을 맺는 패러독스에 빠졌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기자가 독재정치를 옹호할 뜻은 손톱 만큼도 없다. 그러나 싱가포르 국민이 31년 넘도록 리 전 총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철권정치에 따른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과(過)보다는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만든 그의 공(功)을 더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닐까. 경제발전은 결코 공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역사적 등가교환의 법칙’을 보여준 산 증거인 셈이다.

리콴유는 또한 서구세계가 멸시해온 ‘아시아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서구시각에는 아시아 자본주의가 경제성과 합리성보다는 ‘정실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웨버가 아시아는 전근대성을 버리지 못하는 후진성에 함몰됐다고 비웃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무대에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4룡(龍)’의 비약적 성장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서구의 그릇된 가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사회 구성원의 근면과 검약, 그리고 가족을 지키는 희생정신은 아시아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일궈낼 수 있었던 자양분이었다. 리콴유는 다만 아시아적 가치에서 부족했던 합리주의 정신과 시장원리, 투명성을 접목한 경제 실험주의자였다.

한국을 좋아했던 그는 한국의 후진적 정치사회 현상을 이렇게 꼬집었다. 그는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이기면 패배한 정당이 이를 인정하고 다음 선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해 진 정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거리로 뛰쳐나간다.”

사회적 진화론자 리콴유가 우리 곁을 떠나면서 그의 빈자리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인생 궤적을 살펴보면서 국부(國富)를 일궈낸 강력한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논설위원>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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