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우리가 낚으려 한 물고기는 무엇이었을까

서울시극단 연극 '물고기 인간'
中 극작가 궈스싱 데뷔작 국내 초연
물고기 역 배우 박진호 열연 빛나
코믹함 속 묵직한 질문…17일까지
  • 등록 2019-11-12 오전 6:00:00

    수정 2019-11-12 오전 6:00:00

서울시극단 연극 ‘물고기 인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서울시극단 연극 ‘물고기 인간’이 공연 중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극장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방을 둘러싼 사각형의 나무 무대가 눈에 띈다. 무대 가운데 텅 빈 공간에는 흔들리듯 비치는 영상이 진짜 호수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한 구성의 무대지만 관객은 이곳이 잔잔한 호숫가의 낚시터임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다.

막이 오르면 낚시꾼 역을 맡은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낚시를 시작한다. 호수는 영상으로 표현했는데 물고기는 어떻게 표현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기는 찰나 한 명의 배우가 무대 가운데 텅 빈 공간에 나타나 유유히 ‘헤엄’을 친다. 물고기 역을 맡은 배우 박진호다. 그는 공연 내내 단 한 번의 대사도 없다.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이다. 그 모습이 진짜 물고기 못지않아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로 치자면 그야말로 ‘씬스틸러’다.

사람이 물고기를 연기하는 모습이 사뭇 코믹하다. 그러나 극이 전개되면 코믹함 속에 묵직한 질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작품은 대청어를 낚기 위해 30년을 기다린 ‘낚시의 신’(강신구 분)과 대청어를 호수의 수호신이라 생각하며 지켜온 ‘위씨 영감’(박완규 분)의 대결을 그린다. 한 마리의 물고기를 놓고 두 사람이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이 90분 가까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서울시극단 연극 ‘물고기 인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물고기 인간’은 현재 중국 연극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궈스싱의 1989년 데뷔작이다. 서울시극단이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제1회 중국희곡 낭독공연’ 당시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의 연출로 낭독공연으로 먼저 소개됐다. 당시 “신화와 일상이 뒤섞인 희곡을 웃음 터지는 부조리극 스타일로 여유 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한 편의 우화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또는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30년을 기다려온 두 주인공의 모습은 각자 나름의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낚시의 신’은 대청어를 잡으려다 첫째 아들 ‘첫째’를 잃고 아내까지 떠나보냈다. 위씨 영감은 대청어가 호수의 수호신이라는 생각으로 30년간 호숫가를 지켜왔다. 이들 두 사람에게 대청어는 곧 삶의 유일한 목표다.

여기에 ‘낚시의 신’의 셋째 아들 ‘셋째’(이상승 분)와 위씨 영감의 수양딸 류샤오엔(최나라 분)이 등장해 세대 문제를 함께 다룬다. 대청어라는 거창한 목적만 좇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셋째’와 류샤오엔은 각자의 개인적인 삶과 사랑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여기에 낚시대회를 여는 완 장군(박상종 분)과 낚시꾼들이 등장하면서 극은 더욱 풍성해진다.

대청어를 매개로 한 곳에 모인 다양한 인간군상이 펼치는 이야기가 때로는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펼쳐진다. 윤현종 음악감독이 라이브로 곁들이는 각종 효과음과 음악은 극을 더욱 유머러스하게 만든다. 극 후반부 박진호를 비롯한 서울시극단 단원들이 연출해내는 물고기떼 모습은 ‘물고기 인간’의 백미다.

잔잔한 웃음을 전하던 ‘물고기 인간’은 그러나 결말에서는 다소 의외의 선택을 내린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아웅다웅 하는 삶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무엇인가. 우리가 낚으려는 물고기는 정말 있는 것일까. 물고기를 연기하는 배우 박진호의 열연을 보던 가벼운 마음은 극장 밖을 나설 때 조금 무거워질 수 있다. 공연은 오는 17일까지.

서울시극단 연극 ‘물고기 인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연극 ‘물고기 인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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