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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오후 6시 거사.’ 굴곡 많은 삶이 이 한 줄에 접혔다. 1973년, 51세의 촉망받던 천재 조각가가 서둘러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흔적. 그날은 모처럼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고려대 박물관에 ‘가사를 걸친 자소상’ 등 아끼던 작품 세 점을 넣고, 전시장까지 천천히 둘러봤다고 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나 보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로 돌아온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게 초저녁이었으니.
유독 그 죽음을 두곤 이야기가 무성했다. ‘한국 조각미술계의 절망적인 풍토를 견디지 못한 좌절 때문’으로 몰아가는가 싶었다. 그렇게 몇십년이 무심히 흘러갔고, 그렇게 묻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새로운 ‘단서’가 떠올랐다. 숱하게 새겼을, 수많은 조각품의 모티브였던 ‘사랑’의 행보를 드러낸 편지들이 공개된 거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입방정일 뿐, 가슴 아픈 서사는 덮어둔 채 그는 떠났고 작품만 남았다. 비극적인 초상을 뒤집어쓴 붉은 점토 조각들이.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나 보다. 그이의 작품과 자료 700여점이 대부업체의 담보물이 됐다는 기가 찬 소식이 들려온 거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 한국 근대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다. “내가 만든 아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더랬다. 그 말처럼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발행한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작품세계는 독보적이었다.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두상들은 반은 작가를, 반은 어느 여인을 닮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빛도 없는 창고에 담보로 잡혀 묶인 몸이 됐다는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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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정을 들여다보려면 다시 그즈음으로 거슬러야 한다. “작품 모두를 너에게 맡기고 간다”는 유언을 접했던 이는 여동생 권경숙 씨. 그러니 작품을 지켜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동생은 물론 유족에게 오랜 소원이자 숙제였을 거다. 그 돌파구가 2015년 가까스로 마련되는가 싶었다. 권진규가 고교시절을 보낸 춘천에 권진규미술관을 짓는 조건으로 작품 700여점을 40억원에 양도한 거다. 옥광산업체 대일광업과의 계약이었다. 그런데 미술관 건립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대일광업과 갈등을 빚던 유족은 결국 작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대일광업 관계사인 대일생활건강이 대부업체 케이론에서 작품을 담보로 4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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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부채 중 10억 마련 위해 8점 출품
권진규의 조각품 9점이 한꺼번에 경매에 나온다. 오는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에서 진행하는 ‘11월 경매’에서다. 고육책이 맞다. 대부업체 부채 40억원 중 10억원을 갚기 위해서다. 30억원은 경숙 씨가 은행대출 등으로 지난달 변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야 어떻든 참으로 오랜 세월 묻혀 있던 권진규의 ‘아이들’이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 셈이다.
케이옥션이 올해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이번 메이저경매에는 인물상 ‘상경’(1968), ‘혜정’(1968), ‘여인두상 선자’(1966)와 ‘말과 소년 기수’(1965) 등 테라코타 구상조각, 색을 입힌 테라코타 추상부조 ‘인체 4’(1965), ‘인체 1’(1966), ‘문 3’(1967), ‘여인과 수레바퀴’(1972) 등이 나온다. 권진규의 매우 드문 나무조각인 ‘입산’(1970s)도 있다. 출품작 9점 중 담보작품이 8점. ‘상경’ 2억 5000만∼5억원, ‘혜정’ 2억∼4억원 등을 포함해 전체 추정가는 14억∼27억원이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1946년 월남해 가족과 함께 서울 성북동에 정착한다.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 입학한 건 3년 뒤인 1949년이었다. 졸업하던 해인 1953년 ‘제38회 이과전’에서 ‘기사’ ‘말머리’로 잘난 일본인들을 제치고 특선을 수상한 건 두고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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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은 절제됐고 질감은 거칠다. 흙으로 만들어 가마에서 구워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제 인물을 모델로 세운 테라코타 두상은 권진규의 트레이드마크다. 한국에선 흔히 사용하지 않은 아주 오래된 방식을 꺼내며 그는 이를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거기에 있다. 생전 남긴 200여점의 테라코타 자소상·인물상만으로 작품이미지가 굳어왔던 터. 실제 그이의 작품세계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작업해온 동물상, 산과 물과 인체를 납작하게 빚은 부조상 등 구상·추상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이번 경매 출품작들은 적은 수로나마 그 다채로운 사조를 나열한다는 의의가 있다.
△김환기 ‘항아리’ 경매최고 17억원…총 176점 130억원어치
권진규의 조각 9점을 포함해 이번 경매에는 176점이 나선다. 130억원어치다. 최고 추정가에는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을 내세웠다. 회화 ‘항아리와 날으는 새’(1958)가 9억∼17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1950년대 파리시절 김환기가 즐겼던 항아리·새·매화 등이 특유의 푸른톤에 걸린 반구상화다. 이중섭(1916∼1954)의 ‘물고기와 석류와 가족’(1954)은 추정가 8억 5000만∼15억원에 나왔다. 두 아들과 아내를 일본으로 보낸 뒤 그린 추상화톤 작품이다. 그리운 가족이 물고기와 석류를 들고 천진난만하게 엉켜 있는 모습에서 재회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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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부문에선 ‘대동휘적’(1400s)이 대표작으로 나선다. 안평대군 이용, 양사언, 한호 등 조선서예사에서 내로라하는 명필들의 작품 12점을 수록한 서첩이다. 추정가는 2억 2000만∼4억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 4점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제주 유배시절 가족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글인 ‘간찰’(추정가 900만∼2000만원)을 비롯해 ‘화제시’(2500만∼4000만원), ‘지점·루무’(8500만∼1억 2000만원) 등이 응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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