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70대]②"나이 많다고 아무도 안써줘"…76세 朴 할아버지의 하소연

복지혜택 없으면 생계 불가능…70대 노년의 민낯
  • 등록 2017-09-05 오전 5:50:00

    수정 2017-09-05 오전 7:26:51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 때는 노후 준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 그냥 나이 먹고 보니까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더라고.”

박인철(76·가명)씨는 한 달에 47만원을 번다. 기초연금으로 받는 돈이 20만원,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인 ‘노노케어’에 참여해 받는 돈이 27만원이다.

노노케어를 통해 일하는 시간은 한 달에 30시간. 한 달 중 10번 출근해 3시간을 일한다. 혼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에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고 말 동무를 해주는 일이다.

남는 시간에 일을 더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노노케어에 참여하면 월 3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명목상 일자리이지만 돈 없는 노인에게 돈을 주기 위한 ‘복지’에 가깝다.

月 47만원으로 생활…‘70대 절벽’

박씨는 언제부터 이런 생활을 하게 됐을까. “어느 순간부터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는 게 박씨의 하소연이다. 70세 즈음으로 접어든 2000년대 후반께부터다. 이때부터 생계가 곤란해져 일자리를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단 하나였다고 한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70대 절벽’을 박씨는 몸소 실감했다.

억울할 법도 하겠지만 박씨는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고 말했다. “막상 일흔이 넘으니까 몸과 정신이 온전하지가 않아. 몸이 팔팔해 택배 일을 할 수 있겠어, 아니면 정신이 팔팔해 머리 쓰는 일을 할 수 있겠어.” 박씨의 반문이다.

최저생계비(66만원)에도 못 미치는 47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건 쉽지 않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끊긴지 오래다. “만나면 돈”인 이유가 가장 크다. 박씨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5000원”이라며 “인간관계가 끊어진지는 오래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심지어 자녀들과도 소원해졌다고 한다. “친구들은커녕 자식들도 어떻게 사는지 잘 몰라. 연락해봤자 서로 힘든 상황인데 살가운 얘기가 나오겠어? 일단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더라고.”

박씨가 평소에 주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일을 통해 만나는 독거노인들이다. 업이 돼버린 말동무 일이 본인 스스로에게도 소통창구가 된 것이다.

기자는 박씨에게 ‘행복’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별다른 고민도 없는 것 같았다. “행복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점을 박씨는 말하고 싶어 했다.

“잘 나가던 때, 노후는 생각도 못해”

그렇다고 그에게 ‘화려했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씨는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다가, 40대를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았다. 박씨는 철강 납품을 받아 판매하는 대리점을 운영했다. 이전 직장에서 닦은 인맥을 십분 활용했고, 계약을 한 번씩 하면 2000만원 정도씩 벌었다. 1980년대 이야기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나는 대학까지 나왔어. 취직도 바로 했다고. 유망했던 철강회사에서 일했고 10년 경력을 쌓고 독립해 내 사업도 했어. 말그대로 승승장구했던 것 같아. 참 좋았지.”

박씨는 젊은 시절에는 노후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일단 국내 경제가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꾸준히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0% 성장률을 넘긴 해도 5개년이나 됐다. 옛날 그 어려운 시절도 견뎠는데, 미래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는 게 박씨의 말이다.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것을 권고받은 것은 김대중정부 들어서였다. 박씨 나이가 이미 50대 후반에 이른 때였다.

노인빈곤율 점점 상승…불안한 노년

박씨는 한 번의 실수로 사업에 실패한 뒤 다시는 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사회 안전망은 취약했고, 실패는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한 번 넘어지고 나니까 다시 일어서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고. 후회되는 일은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연금 좀 많이 들어둘 걸 하는 거야. 계속 일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힘들어.”

노후를 생각하지 못한 세대가 노인이 됐고,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시장소득(세금 납부 및 복지 혜택을 제외한 소득) 기준 65.4%다. 노인 10가구 중 6~7가구는 버는 돈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 2006년 54.5%에서 2011년 60%를 넘어 2015년 63.3%, 2016년 65.4%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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