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 때는 노후 준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 그냥 나이 먹고 보니까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더라고.”
박인철(76·가명)씨는 한 달에 47만원을 번다. 기초연금으로 받는 돈이 20만원,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인 ‘노노케어’에 참여해 받는 돈이 27만원이다.
노노케어를 통해 일하는 시간은 한 달에 30시간. 한 달 중 10번 출근해 3시간을 일한다. 혼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에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고 말 동무를 해주는 일이다.
남는 시간에 일을 더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노노케어에 참여하면 월 3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명목상 일자리이지만 돈 없는 노인에게 돈을 주기 위한 ‘복지’에 가깝다.
月 47만원으로 생활…‘70대 절벽’
박씨는 언제부터 이런 생활을 하게 됐을까. “어느 순간부터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는 게 박씨의 하소연이다. 70세 즈음으로 접어든 2000년대 후반께부터다. 이때부터 생계가 곤란해져 일자리를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단 하나였다고 한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70대 절벽’을 박씨는 몸소 실감했다.
최저생계비(66만원)에도 못 미치는 47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건 쉽지 않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끊긴지 오래다. “만나면 돈”인 이유가 가장 크다. 박씨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5000원”이라며 “인간관계가 끊어진지는 오래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심지어 자녀들과도 소원해졌다고 한다. “친구들은커녕 자식들도 어떻게 사는지 잘 몰라. 연락해봤자 서로 힘든 상황인데 살가운 얘기가 나오겠어? 일단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더라고.”
박씨가 평소에 주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일을 통해 만나는 독거노인들이다. 업이 돼버린 말동무 일이 본인 스스로에게도 소통창구가 된 것이다.
기자는 박씨에게 ‘행복’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별다른 고민도 없는 것 같았다. “행복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점을 박씨는 말하고 싶어 했다.
“잘 나가던 때, 노후는 생각도 못해”
그렇다고 그에게 ‘화려했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씨는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다가, 40대를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았다. 박씨는 철강 납품을 받아 판매하는 대리점을 운영했다. 이전 직장에서 닦은 인맥을 십분 활용했고, 계약을 한 번씩 하면 2000만원 정도씩 벌었다. 1980년대 이야기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나는 대학까지 나왔어. 취직도 바로 했다고. 유망했던 철강회사에서 일했고 10년 경력을 쌓고 독립해 내 사업도 했어. 말그대로 승승장구했던 것 같아. 참 좋았지.”
박씨는 젊은 시절에는 노후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일단 국내 경제가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꾸준히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0% 성장률을 넘긴 해도 5개년이나 됐다. 옛날 그 어려운 시절도 견뎠는데, 미래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는 게 박씨의 말이다.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것을 권고받은 것은 김대중정부 들어서였다. 박씨 나이가 이미 50대 후반에 이른 때였다.
노인빈곤율 점점 상승…불안한 노년
박씨는 한 번의 실수로 사업에 실패한 뒤 다시는 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사회 안전망은 취약했고, 실패는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한 번 넘어지고 나니까 다시 일어서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고. 후회되는 일은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연금 좀 많이 들어둘 걸 하는 거야. 계속 일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힘들어.”
지난 2006년 54.5%에서 2011년 60%를 넘어 2015년 63.3%, 2016년 65.4%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