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방송국 열정페이는 웁니다

  • 등록 2015-09-05 오전 8:22:40

    수정 2015-09-05 오전 8:22:4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주 7일 일하고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예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 수록 불안감은 높아져요. 꿈만 보고 살다보니 진짜 ‘꿈의 노예’가 돼버린거죠. 삶 자체가 노예인거죠.”

출처 : 이데일리DB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프리랜서 아나운서 A씨. 아나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지방 방송사도 마다하지 않고 수년간 일했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서울과 수도권 방송 PP(채널사업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방송 경력은 일반 기업 ‘대리’급에 들지만 A씨의 신분은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계약직 혹은 언제든 그만둬야 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어요. 그렇지만 비정규직이라고 방송국 정규직과 비교해 차별적 대우를 받을 때마다 속상해요. 가끔씩 심한 말을 들을 때가 있지만 저보다 더 어렵게 일하는 분들도 있어 참고 있어요.”

A씨는 주 7일 일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나름 실력을 인정 받아도 2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다른 ‘일할 곳’을 찾아 헤매야 합니다. 오아시스가 아닌 일할 곳을 찾는 유목민인 셈입니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언어나 신체적 폭력을 당할 때입니다. A씨는 아직까지 극단적인 사례를 당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어 폭력을 당해도 딱히 대응을 하거나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A씨가 유독 실력이 모자라 ‘꿈의 노예’가 돼 ‘매맞는 유목민’ 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A씨는 “2년 계약 기간이 끝나도 정규직 전환 얘기는 없었어요. 다만 프리랜서로 전환해서 (자신들과) 더 일해볼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라고 말합니다. A씨와 더 일하고 싶지만 A씨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A씨는 언제까지 가망 없는 노예 생활을 해야할지 답답합니다. 어느 방송사에서도 경력은 물론 신입 정규직은 바늘 구멍 만큼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A씨는 힘을 내보려 하지만 지쳐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단 계약직 아나운서만 ‘매맞는 유목민’ 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방송 업계에는 ‘꿈의 노예’들이 은근 많습니다. 작가, 프로듀서(PD)도 그 예입니다. 스타급 작가나 PD가 아닌 이상 이들의 고용은 열악합니다.

특히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상 ‘자신이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라는 것을 늘 유념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방송국 정규직을 위한 ‘보조’이며 언제든 잘릴 수 있습니다.

열정을 가진 방송업계 대체 인력은 어디서든 언제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일을 하게 해준 것 자체를 영광으로 알아라”식의 생각도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 스브스 뉴스 영상 구성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화면 캡처
이같은 예가 바로 얼마전 일어난 ‘스브스뉴스 사태’입니다. 스브스뉴스 계정을 통해 드러난 SBS 기자의 언행에서 이 같은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가 올린 글에 따르면 작가는 “존댓말을 해주는 것도 고마운줄 알아야지”, “스브스뉴스와 내가 아니라면 당신은 온갖 무시를 당할텐데”, “왜 불평불만을 갖지? 내 말뜻을 알겠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라”라는 언행을 스브스뉴스 책임자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수차례 반복된 문구중 하나가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라’입니다.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윗사람’의 사고방식입니다.

지난 6월 발생한 MBN 정규직 PD의 독립PD 폭행 사건도 방송 업계에서는 그동안 팽배해 있던 ‘갑을 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독립PD들은 MBN 측의 책임있는 사과와 가해 PD에 대한 해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MBN 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이 와중에 방송 업계 민낯 또한 드러났습니다. 김환균 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8월 10일 MBN 본사 앞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일은 방송계에 만연돼 있다. 갑을의 불평등한 관계,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한 방송제작사에 대한 인격 모독, 불평등한 계약 이런 것들이 일상화돼 있다. 성희롱도 자주 일어난다. 성추행도 있다. 그보다 더한 일도 있다.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나. 외주제작사들이 을의 지위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깨뜨려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적어도 인간답게 대우받게 일하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갑이든 을이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방송·언론계 지망생이 많다고 해서 젊은이들의 열정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특히 같은 사람이지만 프리랜서나 계약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할 기회를 줬다는 이유로 그들을 ‘노예’취급 해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국민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콘텐츠가 우대받는, 창조경제로 나가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일하는 수 많은 계약직·인턴·프리랜서의 눈물을 외면한다면, 정부 의도대로 젊은이들이 이런 일자리에 몰릴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의 열정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돌발 상황
  • 이조의 만남
  • 2억 괴물
  • 아빠 최고!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