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수출 시장이 타격을 받자 내수 소비를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개소세 인하 정책이지만, 기본 취지에 어긋나는 형국이다. 고가의 수입차가 더 큰 할인 혜택을 누리게 되면서 서민에게 정책 초점을 맞춘 정부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
11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에 따르면 차량 평균 가격이 3억원 이상인 람보르기는 지난 9월 34대를 팔았다. 이는 올해 월간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이다. 지난 6월(21대), 7월(24대), 8월(33대)과 비교해도 석 달 연속 성장세다. 람보르기니의 올 1~9월 누적 판매량은 227대로 이미 지난해 연간 판매량(173대)을 넘어서 2015년 국내 시장 진출 이후 역대 최대 판매량을 새로 쓸 전망이다.
람보르기니를 필두로 고가 수입차 판매는 고속질주 중이다. BMW(170.7%), 포르셰(108.8%), 람보르기니(26.4%)의 7~9월 석 달간 1억원 이상 모델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0대였던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1억원 이상 모델 판매량은 각각 1055대, 26대로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서도 억대 고가 차량 시장은 영향을 받지 않는 ‘무풍지대’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
이처럼 2000만원대 중저가인 국산 소형차 판매는 줄고, 1억원 이상 고가인 수입차 판매가 늘어난 것은 하반기 변경된 개소세 인하 정책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3~6월 차량 개소세를 5%에서 1.5%로 인하했다. 그러다 7월부터는 3.5%로 인하 폭을 줄이는 대신 한도(100만원)를 없애면서 공장 출고가나 수입가 기준 6700만원 미만 차량은 혜택이 줄어드는 반면 고가 국산차와 일부 수입차 등은 혜택이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하반기부터 출고가 1억원짜리 승용차에 붙는 개소세는 상반기에 400만원에 달했는데, 350만원으로 50만원 줄었다. 2억원 차량은 200만원, 3억원 차량은 350만원 가격이 더 싸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난 것. 반면 2500만원짜리 승용차에 붙는 개소세는 37만5000원에서 87만5000원으로 50만원 늘었다. 약 6700만원 이상인 승용차를 구매하면 개소세 추가 인하 효과를 보게 되고 6700만원보다 낮으면 세 부담이 늘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2000만원대 중저가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몇십만원 차이로 모델을 바꾸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거나 미루기도할 만큼 가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개소세 인하 정책에 따라 자동차 판매량이 좌우되는 양상도 보인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글로벌 주요 자동차 시장이 곤두박질친 가운데 내수 시장만 두자릿수 이상 성장한 것은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이 ‘판매 절벽’을 방어하는데 일조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개소세 70% 인하 혜택의 막차를 타기 위해 6월에 판매량이 집중됐다. 지난 6월 승용차 신차 등록은 18만3727대로 전년 동기(11만9612대)에 비해 53.6% 급증했다.
자동차업계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개소세 인하 정책이 종료되지 않고 하반기에 연장된 점을 반기면서도 감면 한도를 없애 비싼 차일수록 유리하게 조정된 데에 아쉽다는 반응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영업 현장에서 국산 소형차 판매는 감소하고 고급 수입차는 증가하고 있어 서민 혜택은 줄고 부유층 혜택이 늘어나게 된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판매를 늘려 부품업체 등 후방산업도 수혜를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정책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개소세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소세에서 자동차(연 1조원 추정)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개소세가 없는 주요 선진국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이제 개소세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층이 타는 1000㏄ 이상 1600㏄ 이하 승용차는 생활필수품적인 성격이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 개소세율을 폐지 또는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