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살게됐다 좋아했는데…집 날리고 빚만 남은 재건축

2003년 조합설립 인가받은 서울 관악구 경성연립재건축
공사비 증액·조합 차입 증가에 20%대 지연이자까지
입주 후 시공사로부터 채무변제 소송 당하고 경매까지
집과 땅 제공하고 대출받아 추가분담금 낸 조합원 망연자실
  • 등록 2018-08-10 오전 6:19:00

    수정 2018-08-10 오전 6:19:00

서울 관악구 남현동 경성연립주택 일대를 재건축해 지난 2010년 준공된 하이파크 아파트 전경. 전체 48가구가 경매에 넘어가 입주민(조합원)들이 이달까지 집을 비워줘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사진=지지옥션]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서울 관악구 남현동 단독주택에 살던 한모씨는 15년 전 인근 낡은 연립주택 단지인 경성연립을 중심으로 주변 상가와 주택을 묶어 재건축하자는 말에 솔깃해 재건축 조합 설립에 동의했다. 40여가구가 모여 경성연립주택 재건축 조합을 설립했고 2003년 6월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1동 48가구 규모의 아파트는 2010년 완공됐고 한씨는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에 입주했지만, 2016년 아파트 전체가 경매에 부쳐진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재건축 과정에서 공사비가 증액됐고 추가 분담금을 내라 해서 대출까지 받아 냈는데 시공사 측에서 조합이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았다며 경매를 신청한 것이다. 결국 작년에 낙찰됐고 집을 비워달라는 인도명령서가 날아왔다. 집과 땅을 제공하고 추가 분담금까지 냈는데 결국 집 날리고 4억여원의 빚만 떠안게 됐다.

경성연립 재건축 조합원 중 상당수가 한씨와 비슷한 상황이다. 8월까지는 집을 비워줘야 해서 당장 갈 곳 없는 조합원들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 거처를 알아보고 있다. 조합원들은 조합임원과 시공사에 사기 혐의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경찰이 수사에 소극적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공사비는 늘고 조합은 시공사에서 돈 빌려 쓰고…결국 ‘강제경매’

문제의 발단은 조합의 엉성한 자금 관리와 감시 부재였다. 경성연립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로 엘빈종합건설을 선정한 후 2009년 1월 75억원에 공사계약을 맺었다. 조합원으로부터 신청한 아파트 규모에 따른 분담금을 받아 2011년 6월 시공사에 71억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75억원이던 공사금액은 계속 증액됐다. 공사비 증액은 대부분 조합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이뤄졌다는게 조합원들 설명이다.

조합은 조합원들로부터 공사비 증액에 따른 추가분담금을 받아놓고 제때 시공사에 지급하지 않았고, 연 21%에 달하는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써주기까지 했다.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빌린 금액도 40억원에 달한다. 연체 이자를 연 24%의 고리로 정해 조합 채무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결국 아파트 완공 후 엘빈종합건설은 조합을 상대로 공사대금 83억원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 중 67억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내용의 승소판결을 받았다.

엘빈종합건설은 아파트 한 동 전체를 경매에 넘겼고 세 차례 유찰 끝에 당시 엘빈종합건설 임원이었던 안모씨가 151억원에 낙찰받았다. 감정가 277억원에 비해 45% 낮은 금액이다. 엘빈종합건설은 작년 3월 경락대금이 완납된 다음달인 3월 폐업했다.

안씨는 지난해 7월 이미 입주해 거주하고 있는 조합원을 상대로 인도명령신청을 제기했고 올해 8월까지는 집을 비워달라는 최종 통보를 보낸 상태다.

일부 조합원은 인도명령에 따라 집을 비워주고 경기도 외곽이나 지방 등으로 이사했고 일부 조합원은 보증금 3000만원, 월 100만~130만원의 월세를 내는 계약을 맺고 거주하는 상황이다.

대부분 은퇴세대 ‘날벼락’…조합장 등을 상대로 소송

조합원들은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조합 책임이 크다고 보고 전현직 조합장과 낙찰자 안 모씨를 포함해 엘빈종합건설 임원 두 명 등 총 4명을 상대로 업무상 배임 및 사기 협의로 고소한 상태다.

조합원들은 시공사로부터 차용한 금액 상당부분을 조합장과 조합 임원들이 재건축과 무관한 용도로 쓰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했다고 보고 있다. 회계법인이 실시한 감사도 자료 부실로 중단된 바 있다.

또 고금리의 지연이자에 합의한 점이나 추가 분담금을 내면 소유권 이전에 아무 문제 없다고 설득한 점 등으로 봤을 때 시공사와 모종의 결탁이 있었던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원 소송 대리인인 박진현 변호사는 “대부분 50~60대로 은퇴세대인 이들로 재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며 “집은 잃고 빚만 남았는데 구제받을 방법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악구청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건축물관리대장 생성 신청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대장생성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신청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라며 “1심에서 원고가 승소했고 이에 항소해 2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조합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경찰이 피의자 4명 중 한 명만 조사한 게 전부”라며 “현 정부는 재건축과 재개발 비리를 뿌리 뽑겠다면서 적극 제보해달라고 하는데 일선 경찰의 분위기는 딴판”이라고 꼬집었다.

강제경매 당시 하이파크 아파트 출입문에 붙어있던 유치권 행사 공고문. [사진=지지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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