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아동안전]"20년전 잃어버린 하늘이 죽기 전에 봤으면"

자식 제대로 관리 못했다 손가락질에 평생 죄책감
울고 있던 아이 방치한 시민들, 수사 포기 경찰 원망도
건강악화돼 아이찾기 중단..회복하면 다시 나설 것
  • 등록 2016-09-26 오전 6:30:00

    수정 2016-09-26 오전 6:30:00

[인천=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햇수로 벌써 20년째다. 곁에 있다면 듬직한 20대 청년이 됐을 아들이지만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자식 잃은 어미는 죄책감에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인천 서구에 있는 자택에서 장기 실종 아동 김하늘(당시 3세)군의 어머니 정혜경(55)씨를 만났다. 정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더욱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이가 어디서 뭐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미가 무슨 자격으로 두 발 뻗고 자겠느냐”며 아들의 사진을 한참이나 어루만졌다.

정씨의 아이가 사라진 건 눈 깜짝할 사이였다. 지난 1997년 4월 20일 실종 당일 오후 하늘 군은 경기 의정부 소재 당시 집 앞 골목길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하늘군을 목격한 이웃들은 하늘 군이 집 앞에서 정씨를 한참 불러도 대답이 없자 ‘엄마 찾으러 간다’며 골목길을 나갔다고 했다.

몸살을 앓던 정씨는 약 기운에 취해 깜빡 잠이 든 상태였다. 뒤늦게 아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정씨는 하늘 군이 자주 들르던 문방구와 주변 골목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서도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자 하는 수없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며칠 뒤 경찰은 정씨에게 “더 이상 수사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동네 안경점과 인근 초등학교 앞에서 울고 있는 하늘 군을 봤다는 주변 사람들의 제보가 몇 건 있었지만, 이들 중 하늘 군에게 집이 어디인지 묻거나 경찰에 데려다 주려 한 이는 없었다고 한다.

아들을 찾기 위한 사투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을 붙였다.

전국의 고아원뿐만 아니라 임시 아동 보호소도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일부 보호소에선 “부모가 아닌 걸 알게 되면 상처 받을 수 있다”며 아이들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직장도 뒤로 한 채 아들 찾기에 나서느라 가산(家産)을 탕진했다.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고 결국 8년 전 이혼해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하늘 군을 잃어버린 뒤 낳은 큰 딸은 현재 고등학교 3학년, 작은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다.

그러나 큰 아들을 잃은 자책감으로 다른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정씨는 “‘자식도 제대로 관리 못했냐’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남은 두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하늘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경찰이나 이웃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하는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는다.

정씨는 “당시 경찰이 아이 찾기에 신경을 좀 더 써주었더라면, 이웃들이 아이를 보고 경찰에 제보라도 해줬더라면 아이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동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정씨는 “아동 실종 관련 매스컴 홍보나 관련 프로그램은 과거보다도 줄었다”며 “장기 실종 아동의 가족 입장에선 ‘우리 아이가 이대로 사회에서 잊혀지는 건 아닐까’ 겁이 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우울증이 심해지고 다리 관절 통증이 악화돼 거동마저 불편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받는 최저생계비가 수입의 전부여서 전단지를 더 찍을 돈조차 없다. 하지만 정씨는 건강만 회복하면 다시 아들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다른 바람은 없어요. 죽기 전에 하늘이 얼굴을 다시 한번 보는게 남은 유일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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