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나도 장애인은 못가는 민방위 대피소

서울시내 3200여개소 민방위 대피소 운영 중
휠체어 위한 경사로는 커녕 안내 표지판도 없어
  • 등록 2017-12-27 오전 6:30:00

    수정 2017-12-27 오전 6:30:00

서울시 중구 소공지하쇼핑센터 17번 출구에는 ‘민방위 대피소’ 표지판이 부착돼있으나 휠체어 통행을 위한 경사로는 물론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점자블록도 없는 상황이다. (사진=권오석 기자)
[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대피소를 이용하지 말라는 건가요”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이용한지 10년 가까이 된 안모(28)씨에게 민방위대피소는 ‘그림의 떡’이다.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해 대피소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출구에 리프트가 설치돼 있는 곳은 가뭄에 콩나듯하고 그나마 경사로 있는 곳도 경사가 높아 오르내리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전쟁, 화재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설치한 민방위대피소. 그러나 장애인들에겐 전쟁이 나도 접근하기 힘든 곳이 많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접근성이 좋은 곳을 대피소로 우선 선정하다보니 발생한 문제점이다. 지정 및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지자체는 관련 규정이 없는 만큼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며 난감해 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내 3200여곳을 민방위대피소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www.safekorea.go.kr)에 공식 등록된 서울 시내 민방위 대피소를 무작위로 찾아가보니 휠체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한 경사로는커녕 대피소 표지판조차 설치하지 않은 곳이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피소로 지정된 중구 소공지하쇼핑센터. ‘대피소’ 안내 표지가 입구 쪽에 붙어 있기는 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경보기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는 리프트가 설치된 곳 18번 출구로 이동해야 이용이 가능하다.

영등포구 지하철 9호선 샛강역의 경우 대피소 표지판조차 없었다. 이곳도 휠체어를 타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샛강역 1, 2번 출구 사이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서울시가 2013년 1월에 내놓은 ‘장애인을 포함한 민방위대피소 접근편의성 개선계획’ 보고서에는 지하철역사를 비롯해 빌딩·터널·아파트주차장 등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하공간을 활용하고 급수와 급식, 응급의료가 가능하고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마련된 장소를 우선적으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조차 장애인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뿐 민방위대피소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장애인복지법 제 24조에는 이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점자·음성·문자 안내판을 설치하고 긴급 통보체계를 마련하는 등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는 있으나, 이는 장애인 복지시설에만 해당한다.

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는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에 대해서 ‘장애인 등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유효폭, 기울기와 바닥의 재질 및 마감 등을 고려해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긴 하나 이 역시 대피소는 열외다.

민방위기본법에서도 지하층(건축법상 건축물의 바닥이 지표면 아래에 있는 층)을 두고 있는 건축물을 대피소로 지정할 수 있다는 규정과 이를 안내하는 표지판 설치에 대한 기준만 존재할뿐, 진입로 등 장애인의 대피소 접근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피소로 지정되는 곳은 대개 민간 건물이며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수밖에는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시각경보기나 점자블록 등 장애인들의 접근 편의를 위한 시설물을 사전에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건축허가 때부터 지자체 등이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방위 대피소로 지정된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9호선 샛강역 주변에는 대피소 표지판을 찾아볼 수 없다. (사진=권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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