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그리고 법률]실체진실과 과거의 재구성

  • 등록 2019-11-16 오전 8:45:00

    수정 2019-11-16 오전 8:45:00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한정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탐욕스런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모두 다 우리를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을 상대로 한 사기극과 그 와중에서의 `꾼`들 사이의 복잡한 음모를 다룬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주인공 최창혁이 한 대사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혈기왕성하던 청년 검사 시절 극장에서 처음 보았고,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밤늦도록 잠을 청하지 못하던 어느 밤에 이 영화를 우연히 다시 보았다.

매일같이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만나던 필자로서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자신을 최창혁의 대사 중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다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참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주는 충격이 있었다.

검사, 판사,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들이 하는 일은 대개 과거와 관련된 일이다. 몇날 며칠 밤을 새워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하고 변론을 해도 그 대상은 이미 과거에 일어나버린 일에 대한 것이다. 물론 변호사의 경우 기업이나 정부기관에 법적 자문을 제공하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지 법조인들의 일상 대화를 보면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드물고 과거의 사건, 과거의 사례, 과거에 좋았던 시절 등을 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도 법조계에서는 도제식 훈련이 효과가 커서 이런 대화가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은 늘 남는다.

과거에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에 대한 진실은 오직 신과 사건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법조인들은 과거로 인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증거로써 과거를 복원해 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절차를 지키게 하고 있는데 그게 흔히 말하는 `적법절차`이다.

법조인들, 특히 검사들은 과거를 완벽히 복원해 내는 것을 `실체 진실의 발견`이라고 부른다. 필자도 검사 시절 실체진실의 발견을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었다.

예전에 어느 후배 초임 검사가 수습시절에 혐의를 부인하는 절도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혐의자의 주장만으로도 절도죄가 아니라도 장물취득죄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형법상 절도죄(6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보다 장물취득죄(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가 법에서 정하고 있는 형량이 더 높다.

당시 궁금한 마음에 후배 검사에게 `더 중한 장물취득죄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굳이 더 법정형이 가벼운 절도 혐의를 밝히려고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고 얘기를 해보자, 그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이 아닌 거 같아서요”

오래 전이긴 하지만 예전에 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개봉하자마자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서 본 이유는, 처음에 영화 제목을 보고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밝힌 결과가 과거의 완벽한 복원, 즉 `실체진실의 발견`이 아니라, 혹시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과거의 재구성`이면 어쩌나, 누군가가 만든 `과거의 재구성`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 한구석 생각을 영화 제목이 살며시 들여다보고 있을 줄이야. 이런 생각은 법조인이라면 직역을 불문하고 마음 한 편에 늘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검사 시절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변호사로서 형사사건 변호를 할 때에도 맡은 역할을 떠나서 과거가 잘못 재구성되지 않기를 제일 먼저 바라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진실이 현재에 완벽하게 재복원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찾을 수 있도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잠시 돌아서서 커피 한잔 마시는 동안에도 마음이 분주하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중년들에게 남겼다고 전해지는 9가지 교훈 중에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 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는 내용이 있다. 셰익스피어도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과거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비단 법조인들만이 아니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만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지금 현재와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아깝지만, 어쩌랴 법조인의 일이라는 것이 그러한 것을. 깊어가는 가을, 셰익스피어가 남긴 또 다른 교훈에 위로를 받는다.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

☞한정화(韓廷和)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9기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법무부 감찰담당관실(부장) △창원지검 밀양지청장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수원지검 공안부장 △법무법인(유) 광장(Lee &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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