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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밀집하는 지하철은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장소다. 매년 수많은 피해자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 전동차 안은 사각지대다. 승객들이 서로 밀착할 수 밖에 없는 틈을 탄 성추행이 심심찮게 벌어지지만 증거나 증인이 없어 서로 언성만 높이다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전동차내 CCTV 설치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나 전동차내 CCTV가 성범죄 근절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이 더 클수 있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2014년 7월 개정된 도시철도법 제31조는 절도, 성범죄 사건 등으로부터 이용승객을 보호하기 위한 전동차 내부 CCTV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정법 시행 이후 도입한 전동차량 내부에는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내에서는 매년 1000건 이상의 성범죄 사건이 발생한다. 지난 2015년에는 전체 범죄 사건 2325건 중 성범죄 사건이 1396건(60%)을 차지했고, 2016년에는 2231건 중 1088건(48.8%), 지난해에는 2433건 중 1289건(53%)을 기록했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전체 범죄 사건의 절반 가까이 성범죄인 셈이다.
대중교통의 특성상 성범죄 피해가 발생해도 피의자를 현장에서 잡아내기 쉽지 않은 탓에 현장에서 바로 경찰력을 지원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CCTV 장면 활용, 증인 요청 등 증거 확보가 사건 해결에 필수지만 서울을 비롯해 전국 지하철 전동차 내 CCTV 설치율은 매우 저조하다.
다른 지하철 공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지하철 전동차 중 내 CCTV가 설치된 차량은 40량 뿐이며 인천교통공사는 전체 차량의 21%에만 CCTV가 있다. 대전, 광주 지하철공사는 시민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CCTV가 단 한 곳도 설치하지 않았다.
대학생 김모(23·여)씨는 “지하철에서는 성범죄 피해를 입어도 신고조차 하기 어렵다”며 “전동차 내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들이 대부분이어서 경찰들도 사실상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수준”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 지하철경찰대 관계자는 “계속 이동하는 지하철은 특성상 현장에서 범인을 잡기 어렵다”며 “이증거 확보가 필수지만 지하철 성범죄 사건은 CCTV 장면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피해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황영철 의원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범죄 예방을 위해 지하철보안관 인력을 확대 운영하겠다면서 정작 범죄 예방에 필수적인 CCTV 설치 문제에 대해서는 노후 전동차 교체사업을 핑계로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 예방 효과 글쎄…탑승객 인권 침해 우려 비판도
CCTV 설치가 범죄 예방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승객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회사원 권모(45)씨는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촬영된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할 때가 많다”며 “과연 CCTV 설치가 실제 범죄를 줄여주는 것에 기여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CCTV의 시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조사한 ‘서울 지하철 객실 내 CCTV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조사를 담당한 시민인권보호관 연구원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내 성범죄 사건의 62.8%가 출·퇴근 시간대에 발생하지만 사람이 붐비는 탓에 전동차 앞뒤 천장에 설치된 CCTV로는 승객의 머리 윗부분만 확인할 수 있어 범죄를 적발해내기도, 예방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동차에 설치된 CCTV는 평소에 기관사의 임의조작과 승객의 얼굴 식별이 가능할 뿐 아니라 여름철에는 승객의 신체와 속옷 등이 노출될 수 있어 설치 운영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개정 도시철도법 시행에 따라 올해 신규로 도입되는 2호선 전동차 200량 내부에 200만 화소 화질의 CCTV를 설치 완료해 보급했다”며 “그 외 개정법 시행 전 도입된 전동차량 내 CCTV 추가 설치 역시 추진 중이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진행 속도 면에서 더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