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제갈공명과 식약처

식약처에 신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무리
1천여명이 수백만개 제품안정성 검사 불가능
포지티브 시스템을 네거티브시스템으로 바꿔야
  • 등록 2017-11-02 오전 6:05:00

    수정 2017-11-02 오전 9:06:56

[이데일리 류성 벤처 중기부장] 중국 고전 삼국지에 등장하는 천기를 꿰뚫고 날씨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제갈공명. 그가 현세에 환생해 사업가로 변신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세계 1,2위 갑부순위를 다투는 MS창업자 빌 게이츠나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저스를 제치고 세계 최고갑부 자리를 꿰찰 것이다.

제갈량이 최고부자로 등극할수있는 비결은 정확한 날씨예측 능력에 있다. 미래 날씨를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이기에 가능하다. 날씨가 돈으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은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다. 매년 30억건 이상 각종 파생상품 거래가 이뤄지며 거래금액만 1000조원의 1200배인 120경원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기온이나 강수량, 적설량,허리케인등을 토대로 다양한 날씨선물과 옵션이 거래된다. 가령 3개월후 뉴욕 온도가 평소보다 더울 것으로 점치는 사람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수익을 내는 선물,옵션에 투자하면 된다. 미래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제갈량에게 이 거래소는 부를 창출시키는 ‘머니 머신(Money Machine)’ 그 자체다.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날씨파생상품이 활발히 거래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진실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날씨예보가 오보로 판명나면 여전히 기상청을 비난하곤 한다. 날씨 얘기를 꺼낸것은 기상청처럼 업무자체가 갖는 근본 한계로 국민 원성을 숙명으로 여기는 조직이 또 있어서다. 바로 식약처다.가습기살균제부터 살충제 계란,유해성 논란 생리대등 이슈 한복판에서 국민 지탄을 온몸으로 받고있는 장본인이다.

식약처는 각종 제품이 유해성 논란에 휩싸일때마다 잇단 자충수로 사태를 눈덩이처럼 부풀리며 비난을 자초하는 기관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식약처 조직규모를 감안하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모든 식품,의약품,의료기기 제품이 인체에 유해한지를 사전에 원천적으로 걸려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식약처 안전관리 인력이라야 기껏 1500명 수준. 이들이 수백만개에 달하는 식품 및 의약품,의료기기 제품에 대한 안전성을 도맡고 있다. 예컨대 식약처가 안정성 검증대상으로 맡고 있는 식품업체만 125만개사가 넘는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 업체도 14만개사에 달한다. 조사대상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안전관리 담당자들조차 자신들이 맡고 있는 제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다. 여기에 매일 수천,수만개씩 신제품이 쏟아져나오니 철저한 사전 안전성 관리는 엄두를 낼수 없다.

식약처에 이들 제품에 대한 안전성을 책임져라는 것은 기상청에 모든 예보는 정확해야 한다고 닦달하는 것과 다름아니다. 애초 불가능한 일을 맡겨놓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매번 회초리를 드는 형국이다. 만능 해결책은 없지만 차선책은 있다. 식약처의 안전성 검증을 통과해야만 판매할수 있게하는 현행 포지티브 시스템을 제조사가 최소요건만 충족시키면 팔수 있게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된다. 사후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업체가 모든 책임을 지게하면 제품 안전성은 지금보다 대폭 개선될 것이다. 식약처는 기상청과 마찬가지로 신이 아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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