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젠 연대다] 성범죄 넘은 구조 문제, '절대권력' 허물자

이윤택 18년간 '관습적 성추행' 등
가해자, 대부분 명망 높은 배우·연출가
사회적 명성 사로잡혀 죄의식 못느껴
위계적 권력에 맞설 '연대' 필요성 절실
  • 등록 2018-02-27 오전 6:30:00

    수정 2018-02-27 오전 7:49:04

성범죄 논란에 휩싸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shdmf@).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그는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다.” “배우를 꿈꾸는 이에게 그는 절대적인 권력이었고 큰 벽이었다. 그 누구도 항의하거나 고발하지 못했다.”

연극계 ‘미투’ 운동(MeToo·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에 참여한 이들이 용기를 내서 한 발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의 권력에 대한 폭로였다.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은 가해자가 지닌 막강한 권력 때문이었다.

‘미투’ 운동의 여파가 연일 거듭되는 가운데 이제는 피해를 낳게 한 권력구조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폭력을 넘어 위계적인 권력을 통한 폭력 문제에 맞서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문화예술계에서 명망 있는 인물들이었다. 연극계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연출가 이윤택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였다.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연출가 오태석도 한국 연극사를 대표하는 원로 연극인으로 충격이 컸다. 배우 조민기·조재현,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 등도 교수 또는 제작자라는 사회적 신분으로 성추행을 저질렀다. 지난 25일 “자진해서 신고하고 죄를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 배우 최일화는 현재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명성에 사로잡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잘못을 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출가 이윤택의 사과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윤택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관습적으로 진행된 나쁜 행태였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때로는 죄인지 모르고 저지르기도 했고 때로는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저질렀다”고도 말했다.

문화예술계는 권력 구조가 탄탄하다. 대학에서 이어지는 도제식 제작 환경 시스템과 한 다리만 건너도 모두가 알게 되는 좁은 바닥 때문이다. 뮤지컬배우 A씨(35·남)는 “예술대학은 나이가 많은 후배가 들어오는 경우도 자주 있어 다른 전공에 비해 선후배간 군기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졸업 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연극인 B씨(39·여)는 “극단 내에서 남자 단원들에 대한 폭력 문제도 자주 일어난다”며 “이번 사태는 성폭력을 넘어 폭력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피해자를 응원하며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나 권력구조 문제를 바꾸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은 지난 22일 성명을 내고 “성폭력 및 위계에 의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며 “더 이상 성폭력 및 위계에 의한 폭력으로 고통 받고 연극을 떠나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권위주의 문화와 위계예 의한 폭력’에 있음을 명시했다.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가해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제할 계획이다. 피해사실을 알릴 수 있는 상담창구를 마련하는 한편 2차 가해해 대한 단호한 대처에도 나선다. 이들은 “모든 폐단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우리는 모이고 연대하고자 한다”며 “지금도 혼자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극장과 극단, 제작사들도 자체적인 자정 활동에 나선다. 국립극단은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고 과거 작품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계약서 내 성폭력 관련 조항 마련’ ‘성폭력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 강화’ 등의 제도 개선에 나설 뜻을 밝혔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도 “올해부터 협력극단에 성폭력 예방교육 전문 강사를 보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상담과 대화, 교육 등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극단 네필림, 극단 노을 등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회칙을 만들고 문제가 된 인물들의 작업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정 작용에 동참하고 있다. 연극열전은 성추행 문제를 일으킨 배우 이명행이 연극 ‘프라이드’에 출연한 것을 사과하며 “2018년부터 모든 작품의 계약서에 성폭력 예방 관련 조항이 기재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연극계만이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부장은 “‘미투’ 운동이 연극계를 넘어 대학가와 영화계 등 각계 각층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권력에 은폐된 피해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라면서 “연극계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있는 권력과 폭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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