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주택공급, 양(量)에서 질(質) 따질 때다

이상호 한미글로벌 사장
  • 등록 2020-11-24 오전 5:02:57

    수정 2020-11-24 오전 5:02:57

이상호 한미글로벌 사장.(사진=이데일리DB)
[목멱칼럼] 최근 발표된 정부의 전세대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전세대책의 핵심은 향후 2년간 11만4000가구에 달하는 전세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 얼마되지 않는 호텔같은 숙박시설을 개조해서 전세로 공급하는 것이 맞냐는 식의 지적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는데 정부나 여당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다. 연이어 방 3개 짜리 다세대 주택은 아파트나 다를게 없고,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주택문제는 정치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까지 이같은 정치적 논쟁에 끼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이제는 주택시장에서도 양(量)보다 질(質)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은 양(量) 중심이라고 본다. 반면에 국민들은 질(質)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가구수 대비 주택수를 의미하는 주택보급률은 통계청 자료에서도 2010년부터 100%를 넘어섰다. 최근 들어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지난 8월에 문재인 정부도 수도권에만 127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청약이 시작되는 3기 신도시 물량만 30만가구에 달한다. 양으로만 보면 주택공급 물량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양보다 질이다. 30년 전인 1990년만 해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516달러였지만 2018년에는 3만달러를 돌파했다. 절대빈곤의 시대에는 양이 중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삶의 질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얼마되지 않는 ‘호텔 전세’에 대한 논란도 양이 아니라 질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로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주택정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와 관행을 질(質)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 기업 중에는 오래 전부터 ‘질 경영’을 선언한 기업이 있다. 1993년 삼성그룹의 고 이건희 회장은 그 유명한 프랑크프루트 선언을 했다. 그가 말한 ‘신 경영’의 핵심이 ‘질 경영’이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기업 중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도 대부분 ‘질 경영’을 추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여전히 양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제도와 관행이 여전히 양 중심이기 때문이다.

건설산업만 해도 산업화 초창기인 1970∼1980년대에 대부분의 제도와 관행이 마련됐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도 실제 제도와 관행은 2차 산업혁명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건설산업에서 오랫동안 운영해 왔던 가격 중심의 최저가 낙찰제만 해도 질이 아니라 양 중심의 제도다. 가격경쟁 입찰을 통해 투입되는 비용을 최대한 줄일수록 발주자에게 이득이 된다는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가격(price)이 아니라 가치(value)를 중시한다. 공사비가 싼 것보다 운영비용을 포함한 생애주기비용이 절감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특히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최저가 낙찰제가 설계나 엔지니어링업체를 선정할 때도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설계나 엔지니어링의 용역단가는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제조업이야 기술개발과 생산프로세스 혁신을 통해서 제조품의 단가를 낮출 수 있겠지만,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설계나 엔지니어링과 같은 서비스 산업은 용역단가를 낮추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인력투입도 줄이기 어렵다. 각종 법·제도와 규정에서 투입인력의 수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국가기술자격증을 가진 투입인력의 수만 따지지 전문성이나 역량은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성과물이나 산출물의 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투입 양만 따지고 있는 것이다. 고부가가치의 지식산업이야 할 설계나 엔지니어링산업에서 입찰가격이나 투입인력 수와 같은 양만 따져왔으니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

양 중심의 제도와 관행은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다. 실업률이 높고, 특히 청년 취업률이 낮은 우리 인력시장도 양적으로는 공급과잉이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쓸만한 인재가 드물다고 한탄한다. 질적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양에서 질로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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