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죽음… 3·1운동 영향 여부 놓고 왈가왈부

  • 등록 2019-03-01 오전 7:38:02

    수정 2019-03-01 오전 7:38:02

사진=문화재청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고종은 전근대적 인물이나 그의 죽음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100년 전 승하한 고종의 국장을 다룬 전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을 준비한 연구관의 말이다.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 전시 브리핑에서 “고종의 죽음은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며 “억압에 항거하는 우리 민족의 기념비적 항쟁의 의미를 되돌아 보고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온 역사의 흐름을 상기할 기회”라고 소개했다.

100년 전 승하한 고종의 국장을 3·1절을 앞두고 재조명하는 것을 놓고 왈가왈부가 이어진다. 시작은 서울시가 대한문과 덕수궁 돌담길을 흰 천으로 둘러 100년 전 고종의 국장을 재현하겠다고 하면서다. 고종의 국장을 재현하는 ‘100년 만의 국장’을 기획한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은 “고종의 죽음이 있었고 거대한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의 합법적 공간이 확보됐다”며 “고종의 국장이 없었으면 3·1운동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국권 침탈의 원인을 제공한 고종과 독립운동을 직접 연결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돌담길 등에 설치한 흰천이 ‘국장’이 아닌 ‘민중’을 상징한다는 식으로 말이 바뀌었다는 등 3·1절을 앞두고 혼선이 오고 있다.

고종은 100년 전인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이후 고종이 일본인이나 친일파에게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특히 당시 조선총독부는 3년여에 걸쳐 진행하는 국장 절차를 무시하고 일본식으로 축소 변형해 장례를 치르게 했다. 이는 나라를 잃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울분을 폭발시켜 3.1운동이 확산하는데 영향을 줬다.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준비했다. 내달 1일부터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연다.

‘고종의 승하’, ‘고종의 국장’, ‘고종의 영면’ 등 총 3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국장 때 촬영된 당시 사진과 의궤 등에 남겨진 기록,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의 사진 등 총 15건의 작품을 소개한다. ‘순종황제실록 부록’ ‘영친왕비 일기’와 같은 기록에서는 고종 황제의 승하와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고종 황제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이태왕전하어장주감의궤’, 고종 황제의 국장 때 대여를 맨 민간단체의 기록인 ‘덕수궁인산봉도회등록’ 등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고종 황제의 국장이 일본식으로 진행되면서 기존 국왕의 국장에 비하여 절차가 축소되고 변형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고종 황제 국장 사진첩’에 수록된 사진들은 국장의 진행 과정과 그 의미를 좀 더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제작한 어보와 옥책으로 여전히 남아 있던 당시 왕실 의례의 면모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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