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탐정]`메뚜기·다단계작전` 개미무덤 만드는 시세조종 진화

증권사 직원에 회계사 등 금융전문가도 연루
정보 전달 창구 네이버 카페서 SNS로 이동
단기간 쉽게 번다 소문에 범죄조직도 기웃
  • 등록 2016-09-29 오전 6:30:00

    수정 2016-09-29 오전 7:00:57

[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전업투자자 A씨는 2012년 말 주식거래 전용 사무실을 개설하고 주식거래를 전담할 직원 5명을 채용했다. 2년 8개월 동안 A씨는 상장사 36개사 주가를 조작했다. 해당 주식을 사고파는 가격을 미리 정해놓고 직원들끼리 통정매매를 하거나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 주문을 넣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은 계좌 간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직원 1명당 3~4대의 컴퓨터를 각각 다른 인터넷사업자의 인터넷망을 사용했다. 한 종목에 투자한 기간은 2~3일에 불과했다.

수익을 낸 뒤에는 다른 종목으로 옮겨가는 ‘메뚜기형 수법’을 사용해 50억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겼다. 총 30만회가 넘는 시세조종성 주문이 이어지면서 증권사 내부시스템을 통해 이상매매 신호가 적발됐다. 하지만 A씨와 공모한 증권사 직원이 “계좌 간 상호 연관성이 없다”고 허위 진술하면서 이들의 작전은 계속됐다.

범죄단체 일원인 B씨는 상장사 경영권을 무자본으로 인수하려고 마음먹었다. B씨는 인수할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기 때문에 주가를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평소 안면이 있던 시세조종꾼에게 부탁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시세조종꾼은 약 한달 동안 차명계좌를 통해 상한가 매수를 비롯해 총 1700회에 달하는 시세조종 매수주문을 냈다. 해당 상장사 주가는 단기간에 4배 이상 올랐다.

유가증권 상장사 대표이사 C씨는 이전 최대주주로부터 주식 2400만주를 사들였다. 주가를 끌어올려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증권사 직원을 끌어들였다. 현직 증권사 직원 5명에게 향응을 제공하며 고객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매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각자에게 1000만원권 수표도 줬다. C씨는 100만주만 남겨두고 매각해 200억원이 넘는 부당 이득을 챙겼다. 대주주의 지분 매각 소식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대주주의 의무인 지분 변동공시도 하지 않았다.

증권사 직원부터 회계사까지 작전 가담

국내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범죄 행위가 날로 대담해지고 치밀해지고 있다. 특히 현직 증권사 직원을 소위 ‘설거지’에 동원하는 주가 조작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전·현직 금융기관 임직원 20명 가량을 재판에 넘겼다. 증권사 직원은 주로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주식을 받아주는 역할을 했다.

대주주와 시세조종꾼이 합심해 주가를 올린 뒤 장내에서 매도하면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 기껏 주가를 끌어 올리고도 손에 쥐는 현금이 적을 것을 우려한 대주주는 브로커를 찾아가 주식 처분을 의뢰했다. 증권사 직원 출신인 브로커는 과거부터 안면이 있는 펀드 매니저를 찾아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을 통해 물량을 받아줄 것을 부탁했다.

이때 대부분 수고비조로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이 오간다.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를 이용해 시세보다 싸게 물량을 받아준 뒤 장내에서 주식을 처분하면 작전은 종료된다.

지난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이 적발한 증권범죄 가운데 회계사가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수억원을 벌어들인 사건도 있었다.

국내 유명 회계법인에 재직 중인 회계사들은 자신이 외부감사에 참여한 상장사의 영업실적 정보를 공유했다. 예상보다 실적이 좋은 것으로 판단한 상장사 주식을 사들였다.

실적 공개 이후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 연기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연기금이 매수할 주식을 미리 사서 차익을 얻기도 했다. 공모자에게 휴대전화 메신저를 이용해 종목을 알려주면 공모자는 미리 매수한 다음 2~3% 높은 가격으로 매도 주문을 내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정보기술(IT) 발달로 작전 기술도 진화

한 사무실에서 인터넷 주소(IP)를 달리해 계좌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꾸미는 것은 주가 조작을 위한 걸음마 단계다. 다수 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충분하게 매집한 뒤에는 주가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통정매매와 고가 매수주문을 통해 직접 주가를 끌어올리기도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개미 무덤’을 만들기도 한다. 감독당국에서 주식 관련 인터넷 카페를 예의주시하면서 SNS가 새로운 정보 전달 창구로 떠올랐다.

코스닥 상장사 대표까지 지냈던 지인으로부터 코스닥 상장사와 코넥스 상장사가 합병한다는 소식을 들은 개인투자자는 네이버 밴드를 통해 소문을 냈다. 네이버 밴드 회원에게 합병 소문을 알렸다. 일부 적극적인 회원들과 함께 총 3300회에 달하는 시세조종 주문을 냈다.

증권범죄가 단기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형량이 가볍다는 점 때문에 범죄조직이 개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검찰은 범서방파 조직원 김씨를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기업 인수합병 전문 브로커 최모씨 등과 함께 위폐감별기 제조업체 S사와 스마트폰케이스 제조업체 B사 등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했다. 조사 결과 김씨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최대주주에게 인수대금을 주고 경영권을 넘겨받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올 4월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관계자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를 지속적으로 적발할 것”이라며 “금융기관 관계자의 부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홈런은 짜릿해
  • 카리나 눈웃음
  • 나는 나비
  • 천산가?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