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전에도 생존자와 공방…위안부피해자 단체, 갈등의 역사

1997년 일본 측 민간 위로금 지급 문제로 갈등 촉발
위로금 받은 할머니들 정부 지원금서 배제, 별도 단체 조직
2004년 고 심미자 할머니 “할머니들 앵벌이시켜” 정대협 비판
극우인사들 피해자단체 간 갈등 활용, '위안부 역사' 부정
일본 정부 사과·보상 없이 당사자들 갈등만
  • 등록 2020-05-21 오전 6:50:00

    수정 2020-05-21 오전 7:08:02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위안부 피해자 관련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신)가 피해자 중 1명인 이용수 할머니의 피해자 지원, 기부금 운용 등 문제 제기로 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과거에도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와 공방을 벌인 일들이 뒤늦게 조명되고 있다.

정의연 전신인 정대협은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창립한 단체다. 이들은 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아시아연대회의’를 발족하는 등 창립 목적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 아시아연대회의 활동 이후 유엔인권위원회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잇따라 채택하면서 정대협 역시 국내의 대표적인 위안부 문제 시민단체로 자리를 잡게 된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1997년 일본의 민간단체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 위안부 피해자 5명에게 200만엔을 지급한 일을 계기로 단체와 생존 피해자들 사이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돈을 받은 피해자 중 1명인 박복순 할머니는 일부 매체를 통해 “정대협 등에서는 돈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등 국내 단체가 피해자 지원에서 소홀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보상을 원칙으로 하면서 민간 차원의 위로금 지급을 반대하던 정대협은 ‘평화국민기금’의 금전 지급을 비판하는 한편, 박 할머니 인터뷰 내용도 반박했다. 당시 정대협은 1993년 박 할머니를 포함해 당시까지 피해자로 신고됐던 62명에게 “현금 250만원을 지급하고 피해자들 지장이 찍힌 영수증도 보관 중”이라고 해명했다. 이밖에도 설날 같은 명절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일부 할머니들의 약값을 보조한 일도 있었다는 것이 정대협 해명이었다.

정대협 지적대로 평화국민기금은 설립 단계서부터 그 성격을 두고 논란이 많았던 조직이다. 일본 정부 관할로 설립된 단체지만 보상금은 일본 국민들로부터 받은 모금을 이용한 것은 물론, 그 지급도 일본군의 강제 동원에 대한 책임이 아닌 도의적인 위로금 차원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연구로 유명하며 일본 내에서 나름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진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조차 이 단체 구성에 협력했다가 일본 내부에서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이번에 정의연에 문제제기를 한 이용수 할머니 역시 “강제로 끌려간 우리가 더러운 ‘위안부’ 이름으로 주는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기금 수령을 거부한 사실이 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자유연대 회원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위로금을 받은 할머니들과 정대협 측 대립이 감정적인 수준으로 치달으며 갈등은 계속됐다. 평화국민기금의 돈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인 고 심미자 할머니(2008년 별세)는 2004년에 충격적인 폭로까지 했다. 심 할머니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이라며 정대협을 몰아붙인 것이다.

심 할머니는 일본 내에서 지속적인 소송을 제기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반부’라는 사실을 인정받은 피해자로 알려져 있다. 심 할머니는 뚜렷한 보상·사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도 원칙론을 고수해온 정대협의 현실성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빌미로 모금활동에 진력하는 등 애초 설립 목적을 잊은 행태를 보인다며 비난했다.

이같은 갈등에는 정부 지원금 등 현실적인 문제가 얽혀 있었다. 정대협은 평화국민기금 거부를 고수하면서 1998년부터 자체 모금액에 정부 예산을 더해 위안부 피해자 1인당 430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내면서 할머니들에게 평화국민기금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고, 이 때문에 평화국민기금을 받은 할머니들은 정부 지원금에서 배제된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친일적 인식을 드러내온 국내 극우 인사들은 심 할머니 발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5.18 관련 허위 발언으로 올해 초 명예훼손 혐의 실형까지 선고받은 지만원씨는 2005년 심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지씨가 심 할머니 인터뷰를 자청한 이유가 쉽게 드러난다. 지씨는 이 글에서 “위안부 80%는 살림이 어려워 스스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창녀”라는 극언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일본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세계평화무궁화회라는 별도 단체를 만든 심 할머니 포함 피해자 33명은 결국 남산 기억의 터에 세워진 조형물 ‘대지의 눈’에 새겨진 위안부 피해자 명단에서 빠지게 된다. 2016년에 제막식을 가진 이 조형물에는 정대협이 제공한 피해자 할머니 247명의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이번 논란 와중에 정의연 측은 이같은 복잡한 사정은 설명을 꺼렸다. “사연이 많지만 할머니 속사정은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의연 입장이었다.
서울 중구 기억의 터에 세워진 ‘대지의 눈’ 조형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이 새겨진 이 조형물에는 고 심미자 할머니 등 정대협과 대립했던 단체 소속 피해자들의 이름은 빠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의 근원이 된 일본의 평화국민기금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시민단체들은 이 기금이 결국 “일본 정부가 나름 노력과 성의를 했다는 변명거리가 됐다”며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당시 대부분 고령이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원금을 받은 것을 ‘운동의 논리’로만 깎아내릴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같은 피해자 단체들 내부 갈등이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으로부터 꼬이기 시작한 위안부 관련 논의가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겨우 5년 전 전 정부가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위안부 문제를 종결한다는 한일 합의를 체결했던 사실까지 감안하면, 우리 사회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일관된 의견과 합의도 없었던 셈이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위안부 합의 위헌 확인 청구 사건을 각하하면서 이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점이 주목된다. 헌재는 이 합의가 구두 형식의 합의일 뿐이라며 통상적인 조약의 성격은 가지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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