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직원들이 '경제검찰' 별칭을 질색하는 이유

'경제검찰' 공정위 강압조사 혐의로 고발당해 경찰수사
자문의원 '실패한 로비' 불구 공정위 직원들 조사대상 올라
조사방식 등 제한한 '사건처리 3.0'이후 현장조사 애로 커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은 공정위 ‘갈라파고스’ 만들어
  • 등록 2020-08-21 오전 6:00:00

    수정 2020-08-21 오전 7:55:55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외부에서 ‘경제검찰’로 불립니다.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 등을 방지하면서 시장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기업들에게 매서운 칼날을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검찰 못지 않게 공정위를 경계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공정위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경제검찰’입니다. 압수수색에 긴급체포 등 피의자 신병 확보까지 가능한 검찰과 달리 “조사 받으시겠어요”라고 물어 동의를 받아야 조사가 가능한 현실에 대한 개탄입니다. 공정위는 임의조사 형태로, 사업자의 동의가 없으면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매년 감사원이 공정위가 조사권을 남용하지 않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탈탈 털어대니 “무슨 경제검찰이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합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제대로 조사나 해보고 검찰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모를까, 공정위 권한에 비해 과도한 호칭이 붙은 것 같다”면서 “위원장이 말한 경제 정원사가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조 위원장은 평소 강연 등에서 “ 공정위는 ‘경제 검찰’이 아니라 심판자인 동시에 정원사”라고 말합니다. 경제라는 정원에 잡초 대신 화초가 자라도록 관리하고 돌보는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박근혜 정부인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한 사건처리 절차 개혁방안(사건처리 3.0)은 공정위의 ‘칼’에 족쇄를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현장조사 공문에는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을 경우 과잉조사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위압적인 조사태도를 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벌칙도 부과합니다. 심지어 조사가 끝나면 담당과장은 피조사업체에게 해피콜까지 해 조사 시 애로사항 등도 들어야 합니다.

피조사업체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공정위 직원들 사이에서는 사건처리 3.0 이후 조사기능이 약화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피조사업체들이 방어권을 내세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증거자료를 제대로 입수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일부 기업은 이를 이용해 자료를 은닉, 은폐하기도 합니다. 조사방해에 대해 제재를 내릴 수도 있지만 정작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조사방해 제재는 무의미합니다. 자료 은닉에 대한 페널티도 벌금 수백만원에 그칩니다.

여기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만든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은 공정위를 ‘갈라파고스’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신고를 하고 공정위 전관(OB)나 대기업 관계자를 만나라는 취지이나,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국회나 감사원에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보니 아예 접촉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동 떨어지고, 기업들의 움직임 파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에 대한 방어권은 갈수록 강해지지만 정작 공정위의 칼은 무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경찰이 최근 공정위 부위원장 등 간부급 몇 명을 상대로 직권남용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에 공정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공정위가 조사과정에서 ‘강압조사’를 진행했다는 혐의인 것으로 전해 집니다.

반대로 공정위가 특정기업을 고발하지 않으면 ‘봐주기’ 논란이 늘 생깁니다. 조사 한계로 고의성이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 고발을 할 수 없는데도 공정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최근 공정위 자문위원인 A씨는 공정위 직원인 척 사칭을 하며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런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실패한 ‘로비’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공정위의 불신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과거보다 공정위의 조사 기능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앞서 2018년 검찰이 ‘재취업 비리’ 혐의로 강도높은 조사를 하면서 공정위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최종적으로 상당수 무혐의 결론이 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조사를 받았던 직원들은 상당수 의욕이 꺾였다는 후문입니다.

공정위 한 직원은 “공정경제 구축이라는 국정과제를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돌아온 것은 연이어 터진 검찰, 경찰 조사밖에 없었다”면서 “적극적으로 일해봤자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기류가 있다”고 토로합니다.

공정위가 기업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제한된 권한 아래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손발을 묶어놓고 조사가 미흡하다느니, 봐주기식 조사를 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몰아가선 안 될 일입니다. 경제라는 정원에는 아직도 전지가위 따위로는 손도 못 댈 억센 잡초들이 넘쳐납니다. 칼이 아니라 필요하면 전기톱이라도 쥐어 줘야 합니다. 다만 멀쩡한 꽃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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