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사태,제약업 연구개발 의지 찬물 끼얹나

정부 관계자 책임 미루려는 움직임 감지
제약업, 수 많은 실패 바탕돼야 성공…
일희일비하면 정책 일관성 유지 어려워
  • 등록 2016-10-28 오전 7:00:00

    수정 2016-10-28 오전 9:10:07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지난달 말 한미약품(128940)의 대규모 기술수출 파기로 시작된 ‘제약업 다시보기’가 확산되고 있어 제약 업계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리베이트의 온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신약개발 연구에 집중하려는 업계 노력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며 우려한다.

최근 정부 관계자와 실무 미팅을 진행했던 업계 관계자는 “정책의 방향이 바뀌거나 없어지는 등 문제가 당장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정부 관계자와의 논의 테이블에서 ‘조금 더 논의해 보자’, ‘굳이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한미약품 사태의 본질은 연구·개발(R&D)과 전혀 관계없는 문제인데 R&D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말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했던 폐암 신약 올무티닙과 관련된 계약이 베링거인겔하임 측의 요청으로 파기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무티닙과 관련한 임상시험에서 사망 등의 중증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올무티닙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담당한 베링거인겔하임은 경쟁 약의 개발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올무티닙에 매달리는 게 이득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한미약품이 계약파기를 발표하기 전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포착됐다. 이는 신약 R&D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제약업 전반의 성장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있다 . 한 중견 제약사 CEO는 “그동안 제약업계는 약가인하, 쌍벌제, 투아웃제 등 다양한 규제를 받은 경험이 있어 한미약품 사태가 제약업계에 불똥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하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5~6년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환골탈태했는데 또다시 ‘R&D는 제대로 한 게 맞는지’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기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보건의료산업을 국가 미래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2020년까지 세계 7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로 혁신형 제약사를 지정해 약가 우대, 세제 감면, 연구비 지원, 융자 등 다양한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매년 1천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유한양행, 녹십자, 대웅제약, 한미약품 등 4개 기업이 세계 100대 기업에 올랐고 150위권까지 보면 동아ST, 종근당, 광동제약, 제일약품, JW중외제약, LG생명과학 등 10곳의 제약사가 이름을 올리는 등 가시적 성과를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바이오신약, 임상연구, 나노 줄기세포 같은 융복합 연구를 강화하고 적극 지원한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한미약품 문제는 주식과 관련된 문제이지 R&D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 만큼 다른 제약사의 R&D가 영향 받을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와 실무진들의 괴리감은 갈수록 커지고있다. 한미약품과 베링거인겔하임의 계약이 파기된 데에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부작용도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을 허가해줬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 과정 중에 수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정부에 이런 문제제기를 하면 담당자는 소신을 갖기 어렵게 된다”며 “일희일비하다 보면 일관된 정책 집행이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신약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 보고를 철저히 하는 등 관리가 강화될 수는 있지만 복지부동 때문에 허가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인허가 및 관리 프로세스도 글로벌표준을 따라야 해외에서 인정받는 만큼 업계가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한미약품 사태를 제약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업은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이라며 “한미약품 사례에서 보듯 기술수출을 성공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라 최종 상용화 단계까지의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한미약품 사태 이후 나쁜 일을 감추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오히려 낫다는 분위기가 업계에서 자리잡고 있다”며 녹십자 예를 들었다. 지난 14일 녹십자는 자체 개발한 혈우병치료제의 미국 임상시험에 300억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미국 진출을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굳이 알리지 않았다고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는데 스스로 부정적인 정보를 발표해 놀랐다”고 말했다.

기술수출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지적이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발표한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기술수출 규모는 약 8600억원이다. 이 금액은 계약금 600억원과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8000억원으로 이뤄져 엄밀히 보면 마일스톤 8000억원은 ‘확정’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실제 계약파기로 한미약품이 벌어들인 돈은 계약금과 1차 마일스톤을 포함해 718억원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사 관계자는 “기술수출은 신약개발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며 “언론이나 시장에서 너무 장밋빛으로만 봐 마치 기술수출액 전부가 실제 수입인냥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여신' 카리나, 웃음 '빵'
  • 나는 나비
  • 천산가?
  • 우린 가족♥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