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가정폭력 못 견뎌 '쉼터'왔는데…세상은 '불량 청소년' 손가락질

가정폭력 등에 노출돼 더는 집에서 머물 수 없는 아이들 쉼터서 학교 다니며 생활
‘가출청소년=비행청소년’ 편견 쉼터 아이라는 꼬리표 붙이고 손가락질도
아동복지기관 소속과는 또 다른 유형 체계적인 돌봄 시스템 필요
  • 등록 2017-09-15 오전 7:21:55

    수정 2017-09-15 오전 7:21:55

어둡고 인적이 없는 거리에 한 여성이 서있다.(사진=픽사베이 제공)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잘 되고 싶어요.” 서울 금천구 독산동 서울시립금천중장기청소년쉼터에서 만난 박영진(18·가명)양은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눈앞에서 이웃에게 화를 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한 이후부터였을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소극적이 된 소녀의 바람은 짧지만 묵직했다. 박양처럼 가정에서 상처받은 청소년들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따듯하지 않다. ‘가출청소년=불량청소년’이라는 낙인을 찍고 더 큰 상처를 준다.

가정밖 청소년 보호하는 청소년 쉼터

청소년 쉼터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1~7일까지 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일시쉼터와 최장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쉼터, 최장 4년까지 머물 수 있는 중장기쉼터 등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거리를 배회하거나 집에 머물 수 없는 ‘가정밖 청소년들’이다. 이곳에서는 이들을 보호하며 가정이나 사회로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단기쉼터에서 대부분이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사회로 복귀하지만, 친족간 폭력 등으로 가정 복귀가 어렵거나 너무 어려 사회복귀가 힘든 경우 중장기쉼터로 보내진다.

박양도 이런 경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의붓어머니가 박양의 양육을 포기하면서 박양은 4살 때 헤어진 어머니에게로 보내졌다. 모녀는 10여년만에 다시 만났지만 갈등의 연속이었다. 박양은 친구의 소개로 쉼터를 찾았다. 그리고 9개월을 단기쉼터에 머물며 학교에 다니다 올해 초 장기쉼터로 옮겼다.

단기쉼터가 합숙소라면 장기쉼터는 가정집이다. 수용인원도 10명을 채 넘기지 않는다. 금천중장기청소년쉼터에는 박양을 포함해 모두 7명이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동생과 함께 집을 나온 자매와 알코올중독 어머니의 학대에 집을 나온 여고생 등은 이곳에서 흔한 경우다. 세자매를 성추행한 아버지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사회봉사명령만 받은 채 다시 사회로 나왔다. 세자매는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를 피해 쉼터로 왔다. 장기쉼터는 만 16세 이상부터 입소가 가능해 막내동생은 단기쉼터에서 머물고 있다.

이름표가 붙어있는 바구니에 일주일간 간식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이곳에서는 소장을 포함 5명의 교사가 아이를 돌본다.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며 생활 경제 체감 공부도 하고 청소당번과 빨래당번을 룸메이트와 번갈아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다.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닌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이는 검정고시를 통해 졸업장을 받은 후 취업준비와 함께 퇴소 준비를 한다.

박양은 현재 고3 수험생이어서 수시준비로 바쁘다. 얼마 전까지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어서 대학진학 시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법적보호자인 박양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한 탓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양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출청소년=불량청소년’ 시선에 또 상처 입어

주택가에 위치한 이 쉼터에는 현판이 없다. 문 앞에는 CCTV가 24시간 돌아간다. 벨을 누르기 전에 전화를 하자 센터 관계자는 “CCTV로 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입구에는 ‘(쓰레기 무단투기, 고성방가 등) 반복적 행위 시 고발조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박미란 금천쉼터 소장은 “쉼터 주변에 쓰레기만 떨어져 있어도 지역 주민이 이곳 아이들을 의심한다”며 “청소년쉼터를 불량청소년 보호시설로 오해하는 주민들 때문에 현판도 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모가 없는 보육청소년과 달리 법적 보호자가 생존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지원에서도 제외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아동자립지원단을 통해 보육청소년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만 18세가 지난 보육시설청소년이 독립하면 시설 퇴소 이후 5년간 추적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 지원 등도 포함됐다. 하지만 쉼터출신 청소년은 법적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지원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최근 가정해체 등으로 학교밖·가정밖으로 뛰쳐나오는 아이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에 123개 청소년쉼터가 있다. 현재 학교밖 청소년은 36만~37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체 청소년(650만명) 대비 4% 정도다. 이 중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을 1%라고만 해도 6만 5000명이나 되지만 현재 쉼터에서 수용가능한 인원은 장단기시설을 모두 합쳐도 3만여명에 불과하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쉼터 관련 지원인력은 여성가족부에 단 2명뿐이다.

박미란 소장은 “쉼터에서는 법적 청소년 기간인 24세까지 보호가 가능해 요즘은 20세 이상 후기 청소년들도 많이 머물고 있다”며 “최저임금으로는 생활고 주거가 해결되지 않는 구조에서 아이들을 사회를 내모는 것은 아이들의 희망의 불씨는 꺼버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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