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관객은 결과만큼 과정도 주시한다

  • 등록 2020-12-17 오전 6:00:00

    수정 2020-12-17 오전 6:00:00

[정덕현 문화평론가] 김기덕 감독이 사망했다. 한국의 영화감독 중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를 석권하며 전 세계에 우리의 영화의 위상을 높였던 감독이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2011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피에타>로 한국감독 최초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그 공로가 인정되어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감독이 국내도 아닌 이역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 자체로도 대중들의 애도가 쏟아졌을 일이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사망은 결코 애도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나아가 애도하는 건 ‘잘못된 일’이고 심지어 ‘또 다른 가해’라는 논평까지 나왔다. 영화 <기생충>의 영어 자막 작업은 물론이고 한국영화에 대한 평론과 배우로서 유명한 달시 파켓은 SNS에 “나는 2018년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을 보도한 한국의 TV프로그램이 나온 뒤 나의 수업에서 김기덕 감독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중단했다”며 “누군가 실제로 그렇게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천재인지 관심 없다.(천재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라고 썼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의 남편이자 평론가인 피어스 콜란 역시 SNS에 “그의 훌륭한 업적은 치하하면서 그가 저지른 끔찍한 행동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영화계에 그가 남긴 업적은 잊혀지면 안 되겠지만, 그의 끔찍한 성범죄의 희생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이런 논평들이 나오게 된 건 2017년 함께 작업했던 여배우로부터 폭행, 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기 때문이다. 그간 숨겨져 있던 그의 영화 촬영장에서의 충격적인 일들이 그가 거둔 일련의 영화적 성취에 불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당시 여배우는 김 감독에게 뺨을 맞고 대본에도 없는 베드신 촬영을 현장에서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2018년에 영화계에도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여성 스태프는 물론이고 배우들이 그에게 성희롱,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MBC 은 ‘거장의 민낯, 그 후’라는 제목으로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이 영화 촬영현장에서 상습적인 성희롱, 성폭행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물론 김기덕 감독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법원은 여배우에 대한 성폭력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했지만(말 그대로 증거가 불충분했다는 뜻이지 무죄라는 뜻은 아니다) 폭행 혐의에 있어서는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또한 김기덕 감독은 을 상대로 낸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사실 이러한 폭로가 나오기 전부터 김기덕 감독은 영화계에서도 작품이 가진 가학성과 여성혐오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었다. 첫 작품이었던 <악어>에서부터 <나쁜 남자>, <섬> 같은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성적 대상화되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것이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적 판타지를 끄집어낸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나 <사마리아> 같은 작품에 담긴 종교적 색채들은, 이런 가학과 피학이 어떤 존재론적인 질문이나 구원에 대한 상징과 은유로 읽혀지게 만든 면이 있다. 동양에 대한 신비감과 기독교적 세계에 익숙한 서구에서 그의 작품이 특히 주목된 이유였다.

하지만 작품 속의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가학과 성적 대상화가,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인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18년 그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진 후, 그를 지지했던 이들이 더 이상 “범죄의 결과물을 옹호할 순 없다”고 입장을 선회한 건 그래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제아무리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그래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받은 상을 통해 그것이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범죄에 의한 결과물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장으로 불리던 영화감독이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이 누군가의 피눈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에 대한 애도가 대중들은 물론이고 영화계 내부에서조차 이뤄지지 않는 건, 이제 우리의 평가가 결과만이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 ‘결과만 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제 개발시대 군부독재시절에나 있었을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결과를 냈지만, 과정에서 누군가 피해나 희생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은 바로 이 구시대적인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압축성장의 기치를 내세우고 수출액 얼마를 돌파했다는 그 결과에 박수를 쳤지만, 그 이면에서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눈물이 숨겨져 있었던가. 물론 이런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산업현장에서 재연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온당하지 못한 과정을 통한 성과를 더 이상 우리는 뿌듯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물론 항간에는 김기덕 감독의 부고에도 추모하지 않는 분위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소극적이지만 애도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또한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선 삶과 별개로 그가 이뤄낸 성과들은 온전히 평가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고인이 되었다고 해서 잘못된 일들에 미온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꾼다거나 그의 성취에 대해 상찬한다는 건, 여전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것 역시 어쩌면 사망이라는 결과로 그간의 과정들을 모두 덮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이번 김기덕 감독의 애도 없는 부고는 그래서 결과 그 자체보다 과정이 중요해진 시대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실로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좋은 과정만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고, 당장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과오들이 드러난다면 그건 결코 좋은 결과로 끝맺음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그것이다. 그의 끝이 이렇게 쓸쓸하게 된 것 역시 그가 살아온 과정의 결과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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