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장은 왜 크레인에 올랐나…"직원 월급 받으러 목숨 걸었죠"

지난 7일 크레인 농성 벌인 업체 대표 이모씨 인터뷰
이씨 "책임 회피와 비용절감 이유로 재하도급 성행"
영세업체 근로자 임금 체불 빈번… 공사품질 저하 및 사고 위험도
  • 등록 2018-07-21 오전 8:00:00

    수정 2018-07-21 오전 9:27:43

재하도급업체 대표인 이모(54)씨가 7일 강서구 마곡동 건설현장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최정훈 기자)
[사진·글=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악덕업체 OO건설은 밀린 임금을 달라.”

한달전인 지난달 7일 재하도급업체 대표 이모(54)씨는 강서구의 한 건설 현장으로 가 20m 높이의 크레인에 올랐다. 이씨는 자신에게 일을 맡긴 하도급 업체가 부도가 나자 어음으로 빌린 공사 대금과 직원들의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에 이씨는 공사대금과 밀린 임금을 달라며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원청업체가 임금을 지급을 약속하자 그제서야 이씨는 10시간 가량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왔다.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히는 다단계 하도급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면서 임금 체불 등 영세 건설업체 근로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도급 업체가 원청업체에게 수주한 공사를 또 다른 하도급업체에게 재하도급하는 과정에서 영세 건설업체들이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하청에 따른 불법 행위 적발시 원청업체 처벌 수위를 높이고 정부의 관리 감독 강화, 적정 공사비 산정체계 구축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계 급해 노동청 신고·소송은 엄두도 못내

20년 경력의 공사 현장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를 크레인 위로 떠민 건 ‘두려움’이었다. 이씨는 “그 돈을 받지 못하면 가족과 직원들이 거리에 나 앉아야 했다”며 “죽을 각오를 하고 크레인에 올랐기 때문에 직원들의 임금이라도 챙겨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건설현장에 잔뼈가 굵었다. 주변에선 그를 ‘오야지’(현장조장을 뜻하는 일본어)라고 부른다. 건설현장에서 20년을 보낸 그였지만 요즘 처럼 원청사의 단가후려치기가 심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재하도급이라도 열심히만 하면 그만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다”며 “최저단가에만 혈안인 원청업체부터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은 이젠 정당한 대가조차 걱정해야하는 상황으로 우리 같은 영세 근로자들을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청 신고나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생계가 코앞인 우리에겐 그시간을 버틸 여력이 없다”며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목숨 걸고 크레인에 오르는 것 뿐”이라고 했다.

건설업, 임금체불 규모 전체 업종 두 번째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건설공사의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발주자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 해 재하도급이 허용되고 있지만 법적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결국 대다수 재하청은 불법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 과정을 거치면서 공사의 품질이 떨어지고 사고의 위험은 커지는 반면, 중간 마진이 빠져나간 탓에 근로자 임금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누적된 국내 전체 업종의 임금체불액은 6161억원이다. 이 중 건설업의 임금체불액은 1024억원으로 제조업(2775억원)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이씨는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런 일을 겪은 건 벌써 이번이 4번째”라며 “갖은 수를 써 보전을 받아도 받아야 할 돈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원청사, 하청업체 건전성 여부 확인해야

이에 정부는 원청업체가 불법 재하도급을 지시하거나 묵인하면 해당 원청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정지를 비롯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간 불법 재하도급이 적발됐을 때 하도급업체는 영업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원청업체는 100만~150만원의 과태료 처벌이 전부였다. 정부는 건산법을 개정해 법을 위반한 원청업체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형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다단계 하도급을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하도급 적발 처분 건수는 총 91건이다. 올해 5월까지 적발 처분 건수도 29건에 그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협력해 월 단위로 혐의 업체를 적발하고 있지만 한 해 수만 건에 달하는 건설현장을 다 관리 감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청업체의 책임 강화와 함께 관련 법안에 대한 교육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주제도의 변별력을 강화해 원청업체가 하도급업체의 선정 과정에서 단가만 고려할 게 아니라 책임 있고 우량한 업체인지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근로자에게 적정한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적정 공사비 산정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의 검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현행 법 체계 내에서도 재하도급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우선 현행법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력 강화와 인력 증원 등을 통해 정부 차원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원청업체와 하청업체로 대상으로 한 다단계 하도급 근절법안 관련 교육도 체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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