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 브랜드 히스토리 - 두 남자가 만든 100년의 존재

  • 등록 2017-11-21 오전 7:13:04

    수정 2017-11-21 오전 7:13:04

[이데일리 오토in 김하은 기자] 영화 속 등장하는 자동차 브랜드의 성공 스토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시리즈에 나오는 본드 카 ‘애스턴마틴’이다.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의 첩보물인 007은 영국 비밀 정보국 MI6의 소속 된 살인을 허락 받은 매력적인 첩보 요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그 어떤 첩보 요원보다 유능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기억되며, 그의 곁에는 늘씬한 본드걸과 함께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퍼포먼스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를 품고 있는 애스턴마틴이 존재한다.

애스턴마틴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꾸준히 출연하며 ‘본드 카’의 이미지를 확실히 굳혔고,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드림카 아닌 드림카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언 플레밍의 작품 속에서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고,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애스턴마틴은 본드카로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원작 속 본드카는 롤스로이스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 카를 타고 있는 제임스 본드는 찾아 보기 어렵다. 영화는 원작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애스턴마틴은 거짓이 아니다.

두 남자의 만남.

애스턴마틴의 설립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사업가이자 레이서로 활동하던 라이오넬 마틴과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레이스는 물론 차량 엔지니어링에서도 명성이 높았던 로버트 뱀포드는 1913년 손을 잡고 ‘뱀포드 & 마틴 Ltd’라는 이름으로 애스턴마틴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초기에는 자체적인 개발과 차량 제작에 나서기 보다는 기존의 차량을 개량해 판매 하는 전략을 세웠다. 주로 싱어(Singer) 차량을 주력으로 했지만 그들의 명성이 알려진 건 설립 후 1년이 지난 1914년이었다.

1914년 애스턴 힐 주변의 오르막 코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스턴 클린턴에 출전하기 위해 개발 된 ‘뱀포드&마틴 Ltd’의 첫 차량은 일상은 물론 레이스 무대까지 아우르며 당대 명성이 높았던 코번트리 심플렉스와 이탈리아 산 이소타 프라스키니의 부품을 조합했다. 힐 클라임 레이스에 출전하던 선수의 손에 의해 설립된 브랜드답게 설립 이후 애스턴마틴은 모터스포츠와의 끈을 놓지 않으며 브랜드의 정통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과 파산 그리고 재기

21세기의 상황을 살펴 보면 애스턴마틴은 그 어떤 브랜드 보다 높은 명성과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립 초기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915년 자체 제작한 차량을 선보이며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을 알렸으나 곧이어 발발한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뱀포드와 마틴이 모두 군에 입대하게 되어 회사를 솝위드 에비에이션 컴퍼니에 매각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 로버트 뱀포트가 회사를 떠나며 라이오넬 마틴이 회사를 재건, 본격적인 자동차 제조 브랜드로 성장을 추구 했지만 전후의 경제 상황은 물론 시장에서의 경쟁력 악화로 좀처럼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다시 재기를 선언했던 라이오넬 마틴의 마음과 다르게 회사는 1924년 파산했고, 1926년에는 공장의 문까지 내리고 라이오넬 마틴 마저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애스턴마틴의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이오넬 마틴이 떠난 후 빌 렌윅(Bill Renwick), 아우구스투스 베르텔리(Augustus Bertelli)가 이끄는 엔진 개발 업체, ‘렌윅&베르텔리’와 찬우드(Charnwwod) 가문, 회사의 임직원들과 투자 전문가들은 다시 한 번 회사의 부활을 알렸다. OHV 4기통 엔진을 새롭게 얻은 이들은 다시 한번 애스턴마틴 모터스라는 이름으로 재기에 도전했다.

애스턴마틴은 재기를 하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는 듯 했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좋지 못했는데 자리를 제대로 잡기도 전인 1932년부터 재정과 경영 전반에 잡음이 발생했다. 하지만 애스턴마틴은 멈추지 않았고 베르텔리의 지휘 아래 모터스포츠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외부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지속 된 경영난은 위기로 이어졌다. 1933년, 아서 서덜랜드 경이 애스턴마틴 모터스를 인수했고, 이후로도 지속 된 경영난과 제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47년, 애스턴마틴은 다시 한 번 데이비드 브라운에 매각된다

위기 속에서 발현된 집착과 같은 발전

그러나 이 짧은 시간에도 애스턴마틴은 역사의 한 장면을 새겼다. 뱀포드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루이스 즈로로브스키(Louis Zborowski)가 합류한 후 1922년 브룩랜드에서 개최된 내구 레이스에서 레이저 블레이드가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하며 역사의 한 장면을 새겼다. 55마력의 엔진을 얹고 시트에 앉을 수 있는 운전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차체의 레이저 블레이드는 시속 160km/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애스턴마틴의 실력을 알렸다.

라이오넬 마틴에 이어 애스턴마틴을 이끈 베르텔리의 시절에도 빌 렌윅의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 된 속칭 ‘베르텔리 카’가 애스턴마틴의 명성을 끌어 올렸다. ‘T-TYPE’을 시작으로 ‘인터내셔널’ ‘르망(Le Mans)’ 그리고 ‘MK2’ 등 다양한 방식과 형식의 2인승 로드스터를 생산하며 현재의 애스턴마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애스턴마틴 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잡아갔다. ‘Ulster’ 역시 이 시대에 데뷔한다.

다만 이들은 시장에서 그 모습을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존재였다. 애스턴마틴의 차량은 이미 이 시기부터 우수한 주행 성능과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수작업으로 개발 되는 차량인 덕에 차량 인도도 느리고, 그로 인해 배기량 대비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판매 부분에서는 다소 저조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애스턴마틴의 설립 이후 1940년대까지 애스턴마틴의 전체 판매량은 단 천 대가 채 안 되는 수치였다.

데이비드 브라운 그리고 라곤다

지속 되어 온 경영난과 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차량 제작과 판매에 타격을 입은 애스턴마틴 모터스는 데이비드 브라운 경 아래에서 다시 한 번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된다. 특히 데이비드 브라운은 애스턴마틴 외에 ‘라곤다’도 함께 인수하며 애스턴마틴 모터스에 활력을 더했다. 데이비드 브라운 경이 인수 한 후 라곤다를 시작으로 다양한 차량을 개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출시한 작품이 바로 현재의 애스턴마틴을 이끄는 DB시리즈이며 본격적으로 모터스포츠 활동에도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애스턴마틴의 DB는 바로 ‘데이비드 브라운’의 준 말이다.

40년 대 후반과 50년 대 초반은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듯한 일이 일어났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애스턴마틴 처럼 비교적 높은 출력과 우수한 퍼포먼스를 갖춘 차량들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에 애스턴마틴 역시 DB1을 시작으로 DB2를 연이어 개발, 공개하며 시장의 흐름에 발을 맞췄고 실적 또한 개선되기 시작했다. 특히 1958년에 선보인 DB4는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DB5는 애스턴마틴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큰 힘이 됐다.

역사적인 007 제임스 본드와의 만남

DB 시리즈의 성공적인 안착과 모터스포츠 무대에서의 우수한 성적과 달리 애스턴마틴의 내부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설립 이후부터 단 한 번도 볼륨 시장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탓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조 할 수는 있었지만, 재정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1940년 대 말부터 1960년 대 초반의 애스턴마틴은 화려한 모습으로 포장 된 위기의 존재였다.

그러나 애스턴마틴에게 기회를 찾아왔다. 영국의 로맨틱하고 치명적인 첩보물 ‘007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골드핑거’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제임스 본드 역의 숀 코네리와 함께 호흡을 맞춘 애스턴마틴 DB5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본드 카’ = 애스턴마틴 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후 애스턴마틴 DB 시리즈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단골로 등장, 제임스 본드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혼란의 시대를 맞이한 애스턴마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등장하며 인지도를 끌어 올린 애스턴마틴의 경영 상태는 손 쉽게 개선되지 못했다. 1972년에는 버밍엄 주재 기반 컨소시엄인 ‘MBE’의 소유가 됐고, 이후 1975년에도 경영 상황은 개선되지 못하며 북미 사업가인 ‘피터 스프라그(Peter Sprague)’와 ‘조지 민덴(George Minden)’에게 또 한 번 인수됐다. 이들은 공격적인 운영을 앞세워 360명을 신규 채용하고 생산 설비를 현대화 시키며 영업이익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한다. 이 시기 V8 밴티지와 컨버터블 모델인 볼란테, 그리고 라곤다 V8 살롱 등이 등장하며 경영 상황이 안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애스턴마틴의 지분 매각과 인수는 쉴새 없이 이어졌다. 1980년 대 유럽은 물론 전세계의 경기 위축은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하는 애스턴마틴에게 큰 타격이 됐고, 볼륨 시장을 위한 브랜드가 없는 만큼 재정적 기반이 약해 이내 또 다시 경영난에 빠진다. 페이스 페트롤리움(Pace Petroleum)의 빅터 건틀렛이 12.5%의 지분을 인수하며 애스턴마틴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1983년, 애스턴마틴은 다시 한 번 경영난에 빠지고 빅터 건틀렛은 애스턴마틴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사업이었던 페이스 페트롤리움을 매각하고 미국과 그리스의 자본을 끌어들였고, 이태리의 디자인 회사 자가토(Zagoto)의 지분을 인수해 애스턴마틴-자가토의 협력 체제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스턴마틴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87년, 유럽 포드의 월터 헤이즈와 빅터 건틀렛의 만남에서 포드의 애스턴마틴 지분 참여가 가능성이 거론 됐고, 같은 해 9월 포드는 애스턴마틴의 지분을 인수한다. 이후 포드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재규어-랜드로버-볼보 그리고 애스턴마틴을 통합 관리하는 PAG(Premier Automotive Group)를 설립해 럭셔리 마케팅에 나선다.

애스턴마틴은 1990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는데 밴티지와 DB7이 연이어 공개 된 후 연이어 뱅퀴시와 DB9, 밴티지 등을 꾸준히 시장에 투입했다. 이와 함께 2005년에는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복귀했다. 그러나 경영 위기를 맞이 한 포드가 PAG를 해체하고 브랜드를 매각하며 다시 한 번 애스턴마틴은 매물로 시장이 나왔다. PAG의 산물이 있다면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2009에서 LMP 1 우승의 기반을 쌓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애스턴마틴

설립 이후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지분 매각, 인수의 대상이었던 애스턴마틴은 PAG 해체 후에도 가장 먼저 매각 된 브랜드가 됐다. 르망24시 내구 레이스의 파트너인 프로드라이브(Pro Drive)의 데이비드 리차드가 미국, 쿠웨이트 등지에서 컨소시움을 꾸려 4억 7,500만 파운드를 써냈고, 데이비드 리차드는 이내 애스턴마틴의 파트너에서 애스턴마틴의 오너로 명함을 바꾸게 됐다.

2007년, 데이비드 리차드 체제의 애스턴마틴은 유럽과 북미 시장이 아닌 신흥 시장, 아시아를 목표로 한다. 애스턴마틴의 대륙횡단 프로젝트를 개최하고 중국과 일본, 중동 시장에서 적극적인 프로모션과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데이비드 리차드의 사업 전략은 아시아 시장에 통했고, 애스턴마틴은 전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지나 온 100년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애스턴마틴 설립 100주년이 되던 2013년, 애스턴마틴은 내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그 동안 포드의 엔진을 공급 받던 시스템을 개편, 메르세데스 벤츠 AMG의 엔진을 사용 할 수 있도록 하며 다임러가 애스턴마틴의 지분을 인수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여기에 프리미엄 SUV 시장의 성장에 발 맞춰 SUV 모델 역시 준비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인피니티의 앤디 팔머를 새로운 회장으로 맞이하며 앞으로의 100년을 계획하도록 했다. 애스턴마틴은 험난하게 달려온 지난 100년을 뒤로 하고, 어느새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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