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수당 인상하면 뭐하나…임신하니 "나가라"는 회사

임신부 근무 중소기업 535개사 조사..81.5% 규정위반
임신부에 야간·주말근로 요구..출산휴가조차 안주기도
상시근로 감독 필요하지만 고용청 일손 부족 이유로 ‘외면’
올해 상반기 150개사 점검 계획 수립하고도 98개사만
  • 등록 2017-08-23 오전 6:30:00

    수정 2017-08-23 오후 7:00:11

[이데일리 박태진 이지현 기자] 사례1 유정연(가명·32)씨는 최근 출산 및 육아휴직을 하려 했지만 회사에서 돌아온 건 퇴직 권고였다. 출산, 육아로 앞으로 일하기 어려워질테니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계속 근무하겠다고 했지만 회사에서는 유씨가 임신기간 동안 근무를 태만히 해서 회사가 피해를 입었다며 사직을 강요했다.

유씨는 “임신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을 못하게 하는 게 어이없다 못해 화가 난다”며 “현장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데 정부의 저출산대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례2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앞둔 김고은(가명·37)씨. 복직을 몇일 앞두고 인사팀장은 김씨를 불러 사직을 권고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김씨가 맡았던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8년 간 밤낮으로 일해온 회사에서 통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김씨는 다른 업무라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하자 회사에서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고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김씨는 “회사에 대항해 계속 있으려고 해도 이후 회사생활의 괴로움을 버티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 결국 퇴사하기로 했다”며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복귀 이후 정상적으로 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임신부의 배를 다른 사람이 감싸고 있다.(사진=픽사베이 제공)
정부가 초저출산 해법으로 육아휴직급여를 2배 인상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전년의 1.24명 보다 0.07명 떨어지는 등 저출산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육아휴직을 신청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는 것은 이미 육아휴직이 정착된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 국한한 지원이라는 지적이다.

육아휴직, 장시간근로 제한 등 기본적인 모성보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단속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임신한 직원이 있는 중소기업 535개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10곳 중 8곳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야근, 주말근무 등 무리한 근로를 요구하거나 심지어 퇴직을 종용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르다 적발됐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 임산부 보호규정 위반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면 사용자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때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지 못한다.

또 임신 중이거나 산후 1년 이내인 여성을 유해·위험한 사업장에 배치해서 안된다. 또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 및 휴일근로도 금지다. 산전·후휴가 기간과 복귀 후 30일은 해고금지기간으로 정해져 있어 이 기간에는 어떠한 이유로도 해고할 수 없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이하 남녀고평법)에는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의 혼인, 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 사유로 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 사업주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처럼 제도상으로는 임산부 보호를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 아예 이같은 규정 자체를 모르거나 모르쇠 하기 일쑤다.

고용부가 지난해 535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첫 ‘스마트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436개 기업(81.5%)에서 1162건의 법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은 299건(25.7%), 근로기준법 642건(55.5%), 최저임금법 등 기타 220건(18.8%)으로 나타났다.

스마트 근로감독은 정부가 임산부에게 발급하는 ‘국민행복카드’의 사용내역을 조사해 사용 빈도가 적은 임산부의 사업장을 집중 단속하는 것이다. 국민행복카드는 임신·출산 진료비 50만원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바우처 카드다.

남녀고평법 위반 중 모성보호 위반 건수는 117건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는 △임산부 야간·휴일근로 44건 △임산부 근로시간 위반 39건 △출산휴가 급여 미지급 29건 △출산휴가 미부여 5건 등이다.

상시근로 감독 필요하지만 일손 부족 이유로 ‘외면’

전문가들은 모성보호 근로감독을 상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성보호 관련 제도가 지켜지지 않는 곳은 대부분 중소 및 영세 사업장이나 원·하청구조에 놓인 하청업체”라며 “이 업체들이 여성근로자를 배려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상시 감독체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들어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하려다 퇴직을 종용당하거나 육아휴직 후 복귀했을 때 급여·보직에 대한 불이익을 줘 퇴사를 유도한다는 내용의 상담전화가 예전보다 더 늘었다”며 “정부가 모성보호를 강조하면서 관련 지원제도를 이용하려는 여성들이 늘어난 탓에 회사와 마찰을 빚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제도만 만들어 놓을 게 아니라 강제력을 동원해 기업이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여성 근로자들이 임신·육아로 인한 차별과 부당해고를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아래 매년 사업장을 돌아가며 현장 점검을 벌이고는 있지만 인력부족 등으로 인해 제대로 점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용부는 올해 모성보호 관련규정 위반 빈도가 높은 IT·출판업종 500개사를 조사하기로 했으나 상반기 조사대상인 150개사 조차도 다 점검하지 못한 상황이다. 올들어 고용부가 점검을 완료한 사업장은 98개사 뿐이다. 하반기에 402개사를 모두 점검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장 근로감독은 지방고용노동청이 담당하는 데 인력부족 등으로 여력이 없었다”며 “근로감독을 독려하는 공문을 내려보냈지만 목표치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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