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제약 60주년 김승호 회장 특별대담]1%양보하며 회사 일궜더니, 메이저 제약사 되더라

용각산부터 카나브까지…'제약왕' 김승호 회장
아직도 현업…건강 허락할 때까지 '무한 책임'
숙명 같은 존재 '약'…형님들 약방 운영
고혈압 신약 '카나브'…R&D 18년 성과
창립 60년 키워드…'공존공영'
  • 등록 2017-09-22 오전 6:07:00

    수정 2017-09-22 오전 9:13:35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은 “1%를 상대방에게 양보하면 그것이 나중에는 10배, 100배 커진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대담=류성 벤처중기부장, 정리=강경훈 기자] “손해 보지 않으려고 조금이라도 내것 먼저 챙기면 결국 손해를 봅니다. 하지만 1%라도 남을 먼저 배려하면 열배, 스무배 자신에게 이익으로 되돌아 오더군요.”

1957년 서울 종로5가에서 조그만 약국에서 시작해 매출 8000억원 규모의 메이저 제약그룹으로 성장한 보령제약이 오는 10월 창업 60주년을 맞는다. 김승호(85)보령제약그룹 회장은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 안되는 ‘제약업 1세대’다. 모태인 보령제약은 큰딸인 김은선 회장이, 유아용품 전문 보령메디앙스는 4녀인 김은정 부회장이 회사경영을 맡고 있지만 김 회장은 여전히 매일 출근해 굵직굵직한 경영현안을 직접 챙긴다.

창업 60년을 맞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 회장은 “회사 60년이 무슨 의미가 있나, 60년이면 회갑이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지”하면서도 “다만 창업자가 회사를 60년간 이끌어 왔다는데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꼽은 보령 60년의 가장 큰 자랑은 국산 신약 15호인 혈압약 ‘카나브’ 개발이다. 1992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10년 9월에 승인을 받았으니 꼬박 18년이 걸렸다. 그동안 쏟아부은 개발비가 500억원에 이른다. 카나브는 개발 자체에 의미를 두던 여타 국산 신약과 달리 경제적으로 성공한 약으로 평가받는다. 고혈압 단일제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매출을 올리고 있고 올해 500억원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 51개국에 진출해 그간 올린 누적 수출액이 4억1000만 달러(약 4640억원)에 달한다. 카나브 성공으로 보령제약은 보건복지부 우수혁신형제약기업상, 3000만불 수출탑을, 김승호 회장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하지만 60년이 마냥 꽃길은 아니었다. 1970년대 수해로 공장이 완전히 망가지는 피해를 보기도 했고 글로벌 제약사의 특허소송으로 수년간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지나고 보니 단순히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아니라 직원들이 더욱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보령제약은 지난 1월 지주회사인 보령홀딩스를 설립했다. 현재 보령제약을 비롯해 유아용품 전문 보령메디앙스, 유전체, 제대혈 등 바이오의약품에 집중하는 보령바이오파마, 의료기기 회사인 보령A&D메디칼, 유통 전문 보령컨슈머헬스케어 등 8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두 딸이 경영을 지휘하고 있고 외손주도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마당에 적당히 내려놓고 여생을 즐겨도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김 회장은 “창업자에게 졸업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창업자는 자신이 세운 기업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며 “다행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 건강하지 않다면 나오라고 해도 못 나온다”고 웃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은 85세의 적지않은 연세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약사 출신도 아닌데 제약회사를 세운 이유는? 회사 이름을 보령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

△예상했겠지만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령은 한문으로 ‘지킬 보(保)’에 ‘편한할 령(寧)’을 쓴다. 사람의 안녕을 지키고 가꾼다는 뜻이다. 제약사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고향이라는 의미만 있는게 아니라 약과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1940년대 형님이 보령에서 약방을 운영했다. 지금은 편의점이 들어와 있던데, 당시 그곳은 내 놀이터나 다름 없었다. 크기와 색이 각기 다른 알약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숭문학교로 유학을 왔는데, 당시 육촌 형님 집에 머물렀다. 공교롭게 그 형님도 종로5가에서 약방을 운영했다. 일손이 모자랄 때면 틈틈이 약국 일을 도왔다. 약에 대해 배우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약은 나에게 숙명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약국을 5년만에 국내 최대로 성장시킨 비결은?

△군대 제대 후인 1957년 10월 1일, 신혼집을 팔아 마련한 300만환(약 570만원)을 가지고 종로5가에 다섯평 짜리 작은 약국을 열었다. ‘저렴하게’ ‘다양하게’ ‘친절하게’ 를 모토로 제일 먼저 문을 열고 제일 늦게 닫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5년만에 국내 최대 약국이 돼 있었다. 도매상에서 받은 가격에 최소한의 이익만 붙여 팔았고, 손님이 찾는 약이 없으면 자전거로 서울시내를 다 뒤져서라도 약을 구해왔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약품 진열대도 가장 먼저 만들었고, 전표제로 약의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곳도 보령약국이었다.

-약국과 제약사는 차원이 다른데, 약을 직접 만들 생각을 한 계기가 있었나?

△좋은 약을 싸게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직접 좋은 약을 만드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에는 원료를 소분해 포장하는 정도였지만 정성만큼은 다 했다. 보령제약이 처음 자리잡게 된 계기는 용각산이었다. 이미 일본에서 140년 전통의 명약이었고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 소개돼 인지도가 높았으며 1960년대 경제부흥 시대 현장 근로자, 매연에 노출된 시민 등 시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하나로 용각산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66년 584만원이던 매출은 1967년 용각산이 나오면서 1980만원, 1968년에는 9442만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본격적인 성장의 계기는 겔포스였다. 1969년 일본 매체의 유럽순방에 따라나섰다 프랑스에서 ‘포스파루겔’이라는 제품을 접했다. 알약, 가루약, 물약이 전부였던 당시 현탁액(미세한 입자가 물에 섞여 걸쭉한 형태)은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자극적인 식습관·스트레스·과로 등으로 위장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라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도입했다. 노동의 고단함을 쓴 소주 한 잔으로 달리던 1970년대 중반, 겔포스는 ‘술먹기 전에 먹으면 위장을 보호해 술이 덜취한다’고 알려지면서 날개돋힌 듯 팔려 나갔다. 1975년 안양에 겔포스 생산을 위해 지은 2000평 규모의 공장은 당시 국내 최대 제약공장이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 데스크 대담
-보령제약 60년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솔직히 싫다. 1977년 여름이었는데, 당시 30년만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다. 안양공장에 물이 들어차 설비가 모두 망가졌다. 장비는 진흙탕 속에 잠겼고 만들어 놓은 겔포스가 물에 둥둥 떠다녔다. 직접 피해액 5억원, 영업손실을 감안하면 12억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을 떠올리면 어떻게든 재기를 해야 했다. 다행히 전 직원이 노력한 덕에 3개월만에 공장을 정상화시켰다.

-보령제약이 자체 개발한 혈압약 카나브는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나브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지금은 없어진 스퀴브라는 제약사가 만든 약의 특허를 피해 혈얍악을 만들었다. 하지만 스퀴브는 가만히 있지 않고 이런저런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기술력은 자신 있었지만 남의 약을 요리조리 변경해 약을 개발하면 또 다시 소송에 휘말릴 게 뻔해 우리만의 약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1만2000여개 후보물질에서 자잘한 성공과 실패의 반복을 18년 동안 한 셈이다. 하지만 수출로만 4000억원 이상 벌어들였으니 신약을 개발해야 할 이유가 카나브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카나브가 국산 최초 고혈압 신약이긴 하지만 의사들에게 한 번도 ‘국산 약이니 써 주십시오’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약의 효과에 대한 다양한 임상시험을 진행해 의사들에게 효과를 인정받는 정공법을 택했다. 카나브 개발과정에서 겪은 수 많은 실패의 경험은 그 자체가 역량이 되어 다른 신약을 개발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대사성질환치료제나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경험이 있다 보니 예상보다 진행속도가 빠르다는 판단이다.

-국내 제약업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결국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한 R&D이다. 한정된 국내시장만으로는 성장은커녕 생존도 한계가 있다. 신약다운 신약, 인정받을 만한 신약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카나브를 보면 알 수 있다.

-보령제약 6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돌이켜 보니 부족하긴 하지만 ‘공존공영(共存共榮)’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제약업은 이윤만 추구해서는 절대로 오래 갈 수 없고 인류 건강에 기여한다는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비로소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40년 뒤 보령제약이 100년이 됐을 때 ‘신약을 몇 개 개발했다’ ‘매출이 이만큼 늘었다’ 같은 수치가 아니라 ‘긍정의 힘을 믿는 기업’ ‘이웃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기업’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기업’이라는 얘기를 듣는게 소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회사를 성장시키고 직원이 보람을 찾고 환자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전 직원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은,

193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숭문고등학교 국학대학(현 우석대학) 상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57년 보령약국을 열고 1963년 보령제약으로 확대했다. 고혈압약 카나브를 개발해 세계 50여개국에 수출한 공로로 한국제약협회 회장, 한국생명공학연구조합 이사장, 한국종균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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