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국가부도는 정말 '딴 나라' 얘기일까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08-29 오전 8:00:00

    수정 2015-08-29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제 밤낮으로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붑니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인데요. 여야 정치인들도 덩달아 분주해지고 있네요. 19대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전쟁’이 코 앞이기 때문이지요.

지난주 이 코너를 통해 여권의 조급한 노동개혁을 말씀드렸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갑자기 새누리당 의원 전원을 불러 노동개혁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의원들은 충남 천안에서 연찬회 중이었는데, 부랴부랴 일정을 줄여 상경했지요. 한 재선 의원은 “예고도 없이 불러 놀랐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조급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네요.

고임금 제조업 근로자의 처우를 줄이는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육 돌봄 등 각종 대인서비스와 자영업 같은 질 낮은 서비스업 일자리에 대한 대책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겁니다. 여권이 강조하는 의료 등 지식서비스업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요.

재정적자로 파탄 난 짐바브웨는 그냥 남의 얘기인가

이번 주 해드릴 얘기는 국가재정입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정부의 4대개혁에는 팔을 걷어부치고 앞장섭니다. 그런데 유독 저항이 심한 게 있습니다. 예산개혁입니다. 쉽게 말해 지역구에 가져갈 돈을 줄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밥줄’이나 다름없는 예산을 빼앗아 가려는데 누군들 안 그렇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건 나라곳간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위기는 빚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가계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습니다. 국가라고 다를 게 없지요. 1997년 외환위기(기업부채)나 2003년 카드사태(가계부채)나 똑같습니다. 그때 국민들이 받았던 고통은 굳이 설명을 안해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국가도 부도가 날까요. 날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은 다른 위기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한번 볼까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인 짐바브웨 얘기를 많이 하지요. 천문학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대명사인데요. 먼 옛날의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얘기입니다. 무분별한 재정지출로 나라 빚이 급증하기 시작하면, 투자자들부터 떠날 조짐을 보이겠지요. 투자자들이 국채를 내던지면 덩달아 화폐가치도 폭락할 겁니다. 당연히 물가는 오를 것이고, 화폐는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우유 하나 사먹으려고 지폐를 몇 봉지씩 내야 하는 걸 믿을 수 있습니까. 짐바브웨가 실제 그랬습니다. 외화자산이 있을 리 만무한 작은 저소득층 서민들은 그야말로 파탄이겠지요. 과거 독일이나 러시아, 그리고 최근 남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설마 우리나라가 그렇겠느냐고요?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탄탄한 편입니다. 국가채무 비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중반대인데, 이 정도면 웬만한 선진국들보다 낫습니다.

그래도 우려됩니다. 나라 빚의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아서 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가채무 비중은 10% 중반대였지요. 그러니까 우리경제가 성장한 규모보다(GDP가 증가한 규모보다) 빚을 진 규모가 몇 배는 더 크다는 얘기입니다. 능력 이상의 빚이라는 것이지요. 정부는 벌써 40% 얘기를 합니다. 게다가 고령화사회가 다가왔습니다. 돈을 벌 일보다 쓸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대비하지 않으면 나라 빚의 규모가 더 가파르게 증가할 수도 있겠지요.

한 경제통 중진 의원은 농담조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우리나라가 짐바브웨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위기는 예고없이 찾아온다고들 하지요.

‘말따로 행동따로’ 정치권…나라곳간 걱정되긴 하나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인들의 행태는 기가 막힙니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 사회간접자본(SOC) 등의 예산을 훨씬 더 늘려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같은 국회의원 신분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난색을 표할 정도이지요. 관료들은 속앓이가 심할 겁니다.

가장 문제인 건 정치인들이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점입니다. 건전재정론자를 자임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부터 말이 바뀌고 있습니다. 김 대표가 2013년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후 맨 처음 낸 법안이 국가재정법 개정안입니다. 해당 회계연도의 국가채무 비중이 전년보다 더 낮게 유지되도록 법제화하자는 겁니다. “정치인과 관료의 발을 묶는 법”이라는 볼멘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편으론 그의 균형재정 소신이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김 대표가 법안 발의 2년도 채 안돼 “(경제가) 좋아질 날이 올 수 있는데 그때까지는 확장재정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개정안에 함께 서명했던 김성태 의원(현 국회 예산결산특위 여당 간사)은 국가채무 비중 40% 이상의 확장예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글쎄요. 눈 앞에 보이는 재정사업으로 지역구에 어필하려는 게 더 솔직한 심정 아닐까요.

어느 독자 분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치인들은) 말끝마다 가계부채를 들먹이며 문제라고 하지만 정부부채가 더 문제가 될 겁니다.” 현실적으로 정치인들의 예산 요구를 제어할 방법은 없지요. 그렇다고 자발적인 개선을 기대하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예산개혁도 연금개혁이나 노동개혁처럼 법제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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