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더하지 마 지금이 절정이야

강원 인제군 ''아침가리''
믿지 말자 돌다리, 속지 말자 낙엽더미
그래도 마음만은 자유 충만
  • 등록 2009-06-04 오전 11:50:00

    수정 2009-06-04 오전 11:50:00

[조선일보 제공] 맑아도 너무 맑다. 강원도 인제군 아침가리 계곡은 물뿐 아니라 하늘도 공기도 새소리도 심지어 계곡 이름마저도 부서질 듯 깨끗하다. 깨끗하지 못한 것은 오직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엔 해발 8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000개쯤 되고 이 중 5분의 1에 달하는 200개 정도가 인제군에 몰려 있다. 수원시보다 열 배가 큰 면적(약 1646㎢)에 서울 여의도 인구보다 간신히 많은 약 3만 명밖에 살지 않는 인제군은 '궁극의 맑은 계곡'이 유지될 만한 모든 여건을 갖췄는지도 모른다.

'아침가리'란 예쁜 이름은 조선시대 이 계곡 부근에 절을 짓고 살았다는 스님 '아승(亞僧)'에서 비롯됐다. 아승이 머물던 골짜기라고 '아승가리'라 부르다 마을에 밭이 적어 아침나절이면 밭을 다 갈 수 있다는 뜻이 더해져 '아침가리' 혹은 '조경동(朝耕洞·아침에 밭 가는 동네)'으로 굳어졌다.

▲ 깊은 산 깊은 물이 휴대폰 전파까지 삼켜버리는 강원도 인제군 아침가리 계곡.
▲ 아침가리 계곡으로 흘러든 낙엽이 종류대로 모여 앉아 물속 모자이크를 만든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인제군 기린면 진동1리 '갈터 쉼터' 건너편에서 계곡 트레킹을 시작했다. 한 민박집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침가리 좋나요"라고 묻자 "좋긴 뭐가 좋아유. 물 맑구 공기 맑구 그러니까 좋다구 하지유, 뭐…"라고 무심하게 답했다. 진동 1리 출발점에서 임도와 만나는 조경동 다리까지 계곡은 약 7㎞, 조경동 다리에서 택시를 부를 수 있는 방동약수까지는 또다시 6㎞를 걸어야 한다는 게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그 흔한 등산 지도나 이정표 하나 없는 깊은 산 속 계곡을 걷는 방법에 대해 아침가리 약초건강원 사재봉 대표는 "계곡을 따라 상류로 걸으면 된다"며 "계곡 옆 산길로 걷다가 길이 끊기면 계곡을 건너 반대편 산길로 걸어야 하는데 진동1리에서 계곡을 벗어나는 조경동 다리까지 17번 정도 계곡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 샌들로 갈아 신고 바지를 무릎쯤까지 걷어 올린 후 10분 정도 계곡 상류를 따라 걷자 도로와 인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깊디 깊은 계곡에 발을 살짝 담갔더니 수많은 올챙이들이 호들갑 떨듯 몰려다니며 소란스레 인사를 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빙그르르 돌며 노는 둥글둥글한 자갈은 깨끗한 물속에서 선명하고 또렷하게 반짝였다. 때로는 오르골처럼 아기자기한 소리를 내다가 깊은 웅덩이에 다다르면 천둥처럼 우르릉거리기도 하면서, 물은 위에서 아래로 신나게 흘렀다.

'한국에서 가장 큰 자연림'이라고 일컬어지는 방태산 언저리를 휘감아 도는 계곡답게 좌우로 늘어선 나무와 풀은 울창하고 다양했다. 사람 발걸음 드문 산길이라 그런지 흰 국수나무 꽃들이 누가 뿌려 놓은 것처럼 흙길 위를 총총히 채운 채, 떨어진 모습 그대로 다소곳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뗄 때마다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초록' 속엔 사람을 겁내지 않는 다람쥐와 배 빨간 개구리가 팔딱팔딱 잘도 뛰어다녔다.

휴대폰엔 어느새 '통화 불능'을 알리는 표시가 떴다. 동물들만이 누비던 '우주'에 받아들여지는 순간이다.

심산계곡과 사람의 '밀애'를 시기하는 방해꾼들이 있다. 눈으로 봐선 도저히 구별할 수 없는 '흔들리는 돌'이다리 근육을 긴장시킨다. 겉으로 솟은 부분은 아주 작아도 뿌리가 깊어 단단한 바위가 있는가 하면 상당히 커 보이는데 발을 기대면 두두둑 떨어져 내리는 돌도 많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발끝으로 살짝 건드려본 후 몸을 맡기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다. 또 다른 복병은 낙엽이다. 이 깊은 산에 쌓인 낙엽은 돌 사이 빈 틈 위에까지 두텁게 덮여 있어 잘못 밟으면 다치기 십상이었다. '낙엽 봉변'을 피하는 데는 쿡쿡 찔러보고 건널 수 있는 등산 스틱이 요긴했다. 전화도 안 되는 산속에서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발짝 두 발짝 침착하게 걷는 자세가 필수다.

진동1리 쪽에서 계곡에 들어선 후 깊은 산 속으로 느릿느릿 들어가 방태산 방동약수로 향하는 임도와 만나기까지는 4시간 정도 걸렸다. '만들어진 길' 없는 데를 잘 걷지 못하는 도시 사람들은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계곡을 몇 번 건너고 샌들 차림으로 풀 많은 산길을 걷느라 발톱이 깨지고 종아리가 긁힌다.

▲ 1 같은 물이 때로는 거세게 흐르고 또 다른 곳에선 고인 듯 잔잔하다. 진동1리에서 아침가리 계곡 따라 4㎞ 정도에 있는 깊은 웅덩이와 작은 폭포. 2 계곡서 만난 함박꽃나무 꽃봉오리. 3 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올챙이들이 발 사이를 간질이며 계곡 트레킹의 동행이 되어 준다. 4 얼굴 두 배 크기의 향 짙은 병풍나물. / 조선영상미디어

상처를 호호 불어가며 양말을 다시 신고 등산화로 갈아 신는 사이, 사람 하나 없는 숲 속의 맑은 물에 발 담그던 청량한 기분이 벌써 그리워졌다. '쪼롯쫏쪼' 노래하며 장쾌하게 출렁이는 계곡 위를 잽싸게 날아 어느새 모습을 감춘 예쁜 새 한 마리의 뒷모습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는 건 오만한 발상이라고, 웃으며 타이르는 듯했다. 계곡에 들어서기 전 인제군 곳곳에 걸려 있던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 고속도로가 웬 말이냐'는 플래카드가 떠올랐다. 웬만한 동네가 저마다 '우리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아우성인데도 제발 큰 도로 만들지 말라고 우기는 산동네 사람들의 마음에 '옳소'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가용: 중앙고속도로 홍천 나들목→좌회전해서 44번 국도→연봉 삼거리에서 우회전→451번 지방도→철정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418번 지방도→진방삼거리에서 방동 방면으로 우회전→'아침가리' 이정표 따라가면 왼쪽에 '갈터' 쉼터

대중교통: 서울 상봉2동 상봉터미널(02-323-5885)에서 강원도 인제군 현리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7시20분·10시30분, 오후 3시10분·6시30분 출발한다. 성인 편도 1만7100원. 현리 시외버스정류장(033-461-5364)에서 오전 7시부터 1시간30분 간격으로 방동 약수 지나 갈터까지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갈터 쉼터 바로 옆 진동산채가(家)(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1리 657-13·033-463-8256)는 부근에서 난 나물을 사용한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산채 비빔밥 6000원, 자연산 석이버섯·목이버섯·소고기산적·더덕구이·돌솥 영양밥 등이 함께 나오는 산골 정식 1만5000원. 숲속의 빈터(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1리 3반·033-461-0419)는 주문받는 즉시 국수를 뽑아 만들어 쌉쌀하고 고소한 '방동 막국수'(5000원)가 맛있다. 방태천 바로 옆 오류동 막국수(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1-2)는 고소한 두부구이(5000원)와 향 강한 제철 나물을 넣은 메밀전(5000원)이 입에 착 붙는다. 지역 주민들이 계곡을 누비며 직접 따온 나물을 사 오려면 현리 터미널 옆 아침가리 약초 건강원에 들러볼 만하다. 33년 동안 인제 나물과 약초를 캐온 서재봉 대표가 산에서 난 나물을 판매한다. '제철 나물'을 싱싱한 그대로 팔고 철 지난 나물은 삶아서 말린 '묵나물' 형태로 파는데 요즘은 참나물 곰취가 제철이다. 어른 얼굴 두 배는 족히 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지닌 병풍나물도 좋다. 참나물, 곰취, 병풍나물 1㎏ 1만5000원, 말린 고사리 600g 5만원. 병풍나물과 곰취를 사다가 서울 와서 쌈 싸 먹었더니 향이 너무 진해 코가 뻥 뚫릴 지경이었다. 향을 감당할 수 없다면 간장 설탕 식초 넣고 장아찌를 담그면 된다.

방태산 자연휴양림(033-461-7435·www.huyang.go.kr) 숙소가 깔끔하다. 평일 5인실 4만원·6인실 5만원, 주말 5인실 7만원·6인실 8만5000원. '계곡마을 진동1리' 홈페이지(www.jindongri.co.kr)에서 민박집 검색이 가능하다.

인제군 문화관광과 (033)463-4870


>> 아침가리 계곡 트레킹 TIP

아침가리 계곡, 혹은 조경동 계곡 트레킹은 '갈터 쉼터' 앞 정자에서 시작하는 게 편하다. 쉼터 건너편을 보면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데 그 아래로 난 계단으로 내려간 다음 왼쪽을 보면 계곡(방태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방태천과 거의 직각으로 합쳐져 내려오는 계곡이 보인다. 그 지류(支流)가 바로 아침가리 계곡이다. 합수(合水) 지점부터는 아침가리 계곡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조경동 다리'까지는 아무런 이정표가 없지만 계속 계곡을 옆에 두고 따라 걷기만 하면 되므로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그런데 등산로가 제대로 나있지 않아 종종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게 문제다. 계곡을 따라 걷되, 길이 끊기는 듯하면 반대편으로 계곡을 건너간다. 앞길이 걷지 못할 정도로 험한데도 계곡까지 깊어 건널 수가 없을 땐 무리하지 말고 뒤돌아가서 건널 지점을 다시 찾아보는 게 안전하다.

합수 지점부터 7㎞쯤 가면 '조경동다리'가 계곡을 가로막는다. 그 옆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방동약수'까지 가서 택시를 불러 산을 내려온다. 조경동다리에서 방동약수까지는 2시간 정도(약 6㎞) 걸리고 방동약수에서 출발점인 갈터 쉼터까지 택시는 1만2000원 정도 받는다. 조금 더 걷고 싶다면 방태산 자연휴양림 입구까지, 한 시간 정도 더 걸어도 된다.

샌들이나 물 잘 빠지는 운동화는 필수. 발로 물 차는 맛은 샌들이 더 시원하지만 발가락이 온통 긁힌다는 게 문제다. 물 깊이와 낙엽의 쌓인 정도, 돌 상태 등을 가늠하기 위한 등산 스틱은 필수다. 수풀 무성한 숲길을 한참 걸어야 하므로 반바지보다는 긴 바지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걷는 게 편하다. 산 속은 여름에도 쌀쌀하므로 긴팔 재킷도 꼭 챙기자. 반창고와 수건도 준비하고, 긴 길을 걷니 위한 충분한 물(500mL짜리 적어도 두 병)과 먹을거리를 싸 가야 한다. 합수지점~방동약수까지는 휴대폰이 안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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