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개편]③말로만 바꾼다더니…정권 바뀌어도 그대로

  • 등록 2016-08-07 오후 12:00:10

    수정 2016-08-07 오후 12:04:13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전기가 남아돌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체감요금’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오히려 요금을 깎아주는 요금체계로 소비 촉진을 유도한 것이다.

1973년 ‘석유파동’은 전기요금 체계가 바뀌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이를 계기로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도입됐다. 공장을 멈춰 세우면 안 되니 가정에서 불편하더라도 전기를 아껴쓰자는 취지였다.

다만 부유층에 요금 부담을 더 지고, 불황에 더 어려운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3단계 누진제(누진율: 최저-최고구간 비율 최대 1.6배)를 도입했다. 그때만 해도 텔레비전·전기다리미·전자레인지를 보유해도 부유층으로 분류됐다. 누진제가 일종의 ‘부유세’ 같은 개념인 셈이다.

이렇게 시작된 누진제 체계는 국제유가와 전력수급 여건에 따라 소폭의 조정은 있었지만 뼈대는 유지됐다. 1979년 2차 석유파동으로 12단계(19.7배)로 나눠 차이를 두기도 했다가, 1980년대들어서 효율이 뛰어난 원자력 발전이 늘자 1989년에는 4단계(4.2배)까지 누진율이 다시 낮아졌다.

이후 경제가 발달하며 전기 수요가 늘면서 1995년에는 7단계(13.2배), 2000년도 7단계(18.5배)까지 다시 높아졌다가, 2004년부터는 현행 6단계(11.7배)로 됐고, 2013년에는 누진율을 유지한 채 요금만 2.7% 인상됐다.

누진제 개편 논의가 촉발된 것은 가구, 기후 등 한국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서다. 전력을 적게 쓰는 1인가구나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누진제=부유세’의 등식이 깨졌다. 이들 가구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지나치게 값싼 전기요금 혜택을 받고 있다.

여기다가 대형 냉장고 등 가전제품 보급이 확대되고, 기후변화에 따라 냉난방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서민층에서도 ‘요금 폭탄’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에너지효율이 떨어지는 가전제품을 사용할 가능성도 높다. 애초 저소득층 보호 취지로 만든 누진제의 생명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런 필요성에도 누진제 개편 논의는 매번 난항을 겪고 있다. MB정부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도를 3~4단계 축소하고, 최고·최저 단계의 적용 요금 차이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전기 사용이 많은 부자 부담은 줄이고 중산·서민층 요금 부담은 늘린다는 비판에 부딪혀 좌절됐다. 대신 MB정부는 전기요금만 2.7% 인상하면서 ‘요금 폭탄’ 가능성만 더 높여놨다.

박근혜 정부 초반인 2013년에도 새누리당이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하고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군불을 뗐다. 하지만 누진제 적용 없이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료 개편 논의가 없어 ‘서민 증세’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3개월 만에 개편을 포기했다.

20대 국회 들어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마저도 누진제 단계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부는 누진제 개편시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있다며 개편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누진제) 1~2단계는 원가 이하로 전기를 보급 중인데 (단계가) 통합되면 누군가는 전기요금을 더 부담해야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명덕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량이 많아지면서 가전용 누진제에만 초점이 잡히긴 했지만, 산업용, 일반용 등 전반적인 에너지 체계를 놓고 개편을 해야한다”면서 “요금 폭탄 문제만 고려할 게 아니라 특정계층이나 산업이 지나치게 원가보다 저렴하게 이득을 보고 있는지 전기료 원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적정 요금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를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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