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탈세' 가짜석유 판치는데…판별기술 예산은 0원(종합)

조폐公, '가짜석유 판별용지' 사업 무산 위기
사내벤처 3명, 2년간 고군분투..최초 개발
추가 R&D 비용 절실한데, 내년 예산 전무
시민단체 "공무원 복지부동에 신기술 지지부진"
"사내벤처 지원" 약속 정부, 혁신성장 공염불
  • 등록 2017-11-23 오전 8:05:59

    수정 2017-11-23 오후 11:05:51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연간 1조원대 탈세가 횡횡한 가짜석유 유통을 줄일 신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 부처들이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추가 연구개발에 필요한 내년도 정부 예산 지원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정부가 사내벤처 직원들이 수년간 고생 끝에 만든 기술조차 제때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조폐공사는 가짜 휘발유에 포함된 특정성분에 반응하는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Gasoline-Check)’를 사상 최초로 개발했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관련 추가 R&D(연구·개발) 예산을 한 푼도 배정받지 못했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가짜 경유 판별용지 개발에 나설 계획인데 국정과제 등으로 추진된다면 보다 원활한 사업 추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예산 부담으로 가짜석유 적발 R&D 위기”

가짜석유 유통에 따른 탈루세액이 연간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국석유관리원·동국대 공동 연구용역 결과다. 주춤했던 가짜석유 판매업소들이 주춤했다가 유가 인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석유관리원이 불법·유사석유를 판매 한 주유소 등에 대한 적발 내역이다.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석유관리원,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번 사태는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2013년 당시 가짜석유 유통에 따른 탈루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석유관리원, 동국대에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가짜석유 탈루세액은 연간 총 1조910억원(2011년10월~2012년 9월)으로 추정됐다. 정상 휘발유·경유에 값싼 도료·시너 등 용제나 등유를 섞어 가짜석유를 만드는 수법으로 주유소나 업소들이 부당이익을 챙긴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이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조폐공사도 대책을 고심했다. 이러는 사이 지난해 1월 조폐공사에 사내벤처가 출범했다. 소속 직원 3명은 가짜 휘발유 판별 용지를 만들기로 했다. 조폐공사는 화학 검사로 가짜 지폐·화장품·홍삼 등을 가려내는 위변조방지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진들은 이 같은 신기술을 가짜석유를 감별하면 탈세 방지 효과가 클 것으로 봤다.

사내벤처 직원 3명은 2년간 고생한 끝에 올해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를 개발했다. 조폐공사는 지난 9월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이어 조폐공사와 교통안전공단은 이달 1일부터 서울, 부산 등 전국 25개 자동차검사소에 이를 보급했다.

휘발유 한 방울만 판별용지에 떨어뜨리면 2분 이내에 가짜 여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병원의 임신 검사처럼 종합적이지는 않지만 소비자들이 휴대용 임신 테스트 기기를 사용해 보다 빠르게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자체 예산 3억원을 투입해 만든 신기술로 1조원 가량의 가짜석유 탈세를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연구진의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그동안 연구진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 보급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가짜경유 판별용지까지 개발하려면 자체 예산으로는 힘들기 때문이다. 국책과제로 선정돼 예산을 받으면 보급 범위도 넓어질 수 있고 보다 빨리 연구개발을 완료할 수 있다.

산업부 “기재부 소관”, 기재부 “조폐公 의결사안”

가짜 휘발유 판별용지(Gasoline-Check), 가짜 휘발유의 특정 성분에 반응해 용지가 변색하는 기술로 가짜 휘발유가 닿으면 5초~2분 이내 남색으로 변색된다.[사진=한국조폐공사]
그러나 정부는 거절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가짜석유 유형이 여러 가지여서 이 용지로 모든 것을 잡을 수 없다”며 “조폐공사가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예산 지원은 기재부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예산 관련 의사결정은 정부와의 협의가 아니라 조폐공사 이사회의 의결로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에 신기술이 육성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정부가 각종 세금을 올리기 전에 새는 세금을 막는 방도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9월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사내벤처, 혁신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밝힐 예정”이라며 사내벤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2016년 불법·유사석유 판매업소 조치내역, 가짜석유를 팔아도 등록취소는 11곳에 그쳤다. [단위=업소,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석유관리원이 올해 1~7월 적발한 가짜석유 판매 주유소 현황.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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